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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Sep 14. 2022

어느 날의 환갑 파티

시간이 지나가도 남는 것들

"대표님, 50대가 되면 어때요? 50대도 꽤 괜찮아요?" 내년이면 50대를 맞이하는 J 선배가 깜짝 파티 이후에 부사장님께* 물었다. (*나의 호칭은 예전에 한 직장을 함께 다니던 시간에 멈춰있었다.)


20대 사회생활 꼬꼬마 시절, 한 없이 높아 보였던(여전히 어려운) 부사장님. 스토리텔링과 전략을 좋아하고, 사람과 회사/브랜드 사이의 길을 만드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셨던 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찾아가면 언제나 도달할 수 있는 여러 길을 안내해 주시던 분, 제안서 하나를 위해 달리고 달릴 때, 한 번 보고도 인사이트를 쏟아내 방향을 잡아주셨던 분, 새로운 브랜드 수주 하나보다 직원들의 '작은 성공' 경험의 축적을 높게 사던 분. 그랬던 부사장님이 올해 환갑이었고, J 선배와 다른 후배들이 조용한 작당 모의로 OB들이 함께하는 '환갑 파티'를 추진했더랬다.



이번 환갑 파티에 모인 선후배들은 대략 10명, 열정적으로 일했던 20대와 30대 초반에 이어졌던 인연. 이후 우리들의 커리어 길들이 갈라져, 부사장님은 현재 디지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의 공동 대표로 일하고, 다른 선후배들은 식품 회사, 패션 회사, 카페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회사, 스타트업, 대학원생 등등으로 다양한 세계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 뭐하고 사는지 돌아가면서 얘기할 만큼, 강한 끈과 느슨한 끈의 연대가 섞여 있던 모임이었다.


그리고 작당 모의했던 그날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P와의 저녁 식사 자리인 줄 알았던 부사장님이 시간 맞춰 등장했고, K 후배님이 새벽까지 준비했다는 오프닝 사회 멘트를 쏟아내면서 깜짝 파티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선생님의 환갑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년 *월 태어났으며 **를 졸업한 재원입니다. 어여쁜 사모님을 만나 슬하에 **를 두고 있으며, 애칭은 **. 그의 유행어로는 '이를테면'이 있으며, 친한 친구로는 **님과 **님이 있습니다. 특이사항으로는 미국에서 *** 경험이 있으며, 일산에서는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쭉쭉 읽어 내려가는 사회자를 보며, 부사장님은 사회를 볼 거면 종이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마디 보태셨지만, '이를테면'이라는 습관과 부사장님 주변을 꿰뚫는 디테일들로 모두가 재미있다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열심히 살아온 ***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물을 수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물 전달은 오늘 내빈객 중에서 가장 화도 많고 나이도 많은 ***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선배 J를 나이도 많고 화도 많다는 포인트로 집어낸 게 너무 웃겨서 또 웃었다. 그렇게 환갑잔치가 유쾌하게 쭉쭉 진행되고, 시간이 흘러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이 날 밤. 이 날을 위해 작당 모의하던 카톡 방에 부사장님이 합류했고, 메시지를 남기셨다.


후배님들, 깜짝 생일 자리에 감동~ 그리고 진심 감사했습니다. 전에 회사에 있을 땐 제가 윗사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분들이 일선 선배님들이자 존경스러운 후배님들입니다. 지난 시간들에 함께 공유할 추억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오늘 저녁 저를 잠시나마 빛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왜 이 메시지가 이렇게 마음에 남을까. 어른의 글, 통찰의 글 같은 느낌이어서였을까.

옛날 옛날의 이십 대 직원들은 사십 대를 바라보거나 이미 넘어선 나이가 되었고, 회사에서 늘 큰 사람이었던 부사장님은 환갑을 맞았다. 시간은 늘 너무 쏜살같이 달려가서, 되돌아보기에도 까마득하게 흘러버렸다.


부사장님의 단통 방 메시지에 이어서, 사람들이 화답을 하기 시작했다.

부사장님!! 전 촌사람이라 그런지 오늘 부사장님이 들어오실 때 괜스레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답니다-!-! 그만큼 엄청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그립고 소중하기 때문이겠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여 차이나타운에서 같이 연태 고량 마실 수 있는 제가 될게요!! 늘 애정 합니다
함께해 주셨기에 지금의 저도 있다고 생각해요~~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뵈어요! 제 첫 회사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멋진 분들과 한때 같은 곳에서 일했다는 것과 그 인연이 계속 이어질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한결같은 모습도 열정 가득한 마음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추억을 공유하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오늘도 또 이렇게 한의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진심 좋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되기까지, 앞서 끌어주고, 도와주고, 뾰족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준 많은 사람들, 그렇게 우리는 여러 사람의 작은 영향들이 모여 현재의 우리를 살고 있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단순히 '일'만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 과정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성장한다. 더디 보여도, 시간이 쌓이면 보이는 것들. 언뜻 멈춰 서 있는 것 같던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지나가고 보니 우린 각자의 트랙에서 얼마나 잘 뛰어왔던 걸까.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부대끼면서 일한다,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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