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규칙 없음>
예전에 일했던 스타트업에 처음 출근 했을 땐 모든 것이 새로웠다. 종종 이상해 보였고, 가끔 감탄했다. 젊고, 자유롭고, 솔직했으며, 유연했다. 내가 꼰대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 기간 내 몸에 베인 일하는 방식과 마인드셋을 단번에 바꾸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조금씩 달라지고자 했으나 생각만으론 부족했다. 스타트업이라는 다른 세상은 꽤나 즐거웠고,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마흔에 스타트업에 입사해 겪는 문화 충격, 그 이야기의 힘은 참 셌다. 나의 지인을 포함하여 꽤 많은 외부 미팅에서 회사의 문화와 철학을 말할 때면, 사람들이 나의 내적 갈등을 VIP석에 앉아 직관하듯 꽤 흥미롭게 관람한다는 것이 느껴지곤 했다. (30대 중반 이상의 사람이라면, 특히 더 반짝반짝 듣고!) 물론 당시 회사가 가지고 있었던 매력적인 결함도 그 이야기의 힘을 강화하는 요소이기는 했다.
이번엔 내가 '아니 그런 문화의 회사가 있다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규칙이 없는 회사(No Rules Rules), 넷플릭스 이야기. <규칙 없음>은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로 부터 성공의 법칙을 넷플릭스 CEO 뿐만 아니라 200여 명이 넘는 전현직 직원 인터뷰로 들어보는 책이다. 규칙 없음을 주창한 배경에서부터, 그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의 경험이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떤 경험은 삶을 결정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실패의 경험이라면 더. 리드 헤스팅스도 그랬나 보다. 그가 넷플릭스의 첫 위기에서 얻은 인사이트는 지금의 넷플릭스 문화를 만들어낸 터닝 포인트이기도 했다. 책의 주제는 '규칙 없음'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이자 그가 위기에서 깨달은 것은 바로 '인재 밀도'이다.
1998년 DVD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2001년 위기를 맞는다. 자금 조달이 어려웠고, 직원 중 3분의 1을 해고했다.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 DVD 사업이 난데없이 호황을 맞았다. 직원은 30% 줄었는데, 남아있던 직원들은 더 의욕적으로 일했다. 이때 리드는 조직 내에서 '인재 밀도'가 갖는 중요성을 깨닫는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능률을 높인다', '성과는 전염성이 강하다'라며, '이것은 네플릭스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점이다. 빠르고 혁신적인 직장은 소위 말하는 비범한 동료들로 구성된다'로 강조한다.
동시에 평범한 사람이 팀에 섞여 있으면 팀의 성과가 떨어지는 이유를 아래로 설명한다.
매니저의 기운을 빼 최고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
그룹 토의의 질을 떨어뜨려 팀의 전반적인 IQ를 낮춘다.
사람들이 싫어할 일을 하게 만들어 능률을 떨어뜨린다.
남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직원을 회사에서 나가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도 받아준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게 '인재 밀도'에서 넷플릭스의 문화가 시작되고, 이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문화가 '솔직한 피드백'이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가 요구할 때만 피드백을 주어라’. ‘칭찬은 공개적으로 하고 비판은 사적으로 하라’ 등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넷플릭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예를 들면, 누군가 리드에게 와서 다른 사람에 대해 코멘트를 하면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이 얘기를 그 사람에게 했겠죠? 그는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이 지점에서 혼자 낄낄거렸다. 내 경험과 너무 비슷했다. 예전에 일했던 스타트업도 솔직함을 중시 여겼다. 내가 투정 부릴 때마다 대표가 했던 말도 똑같았다. "가서 직접 얘기해 보면 어때요?", "그런 의도가 아닐 텐데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몇 번 반복되던 말은 결국 "민희 님은 앞과 뒤가 너무 다른 거 아닌가요?"로 파국(?)을 맞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솔직한 피드백이라고 해서 똑똑한 왕싸가지가 되라는 것은 아니며, 넷플릭스는 이를 4A로 설명한다.
AIM TO ASSIT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하라)
ACTIONABLE (실질적인 조치를 포함하라)
APPRECIATE (감사하라)
ACCEPT OR DISCARD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라)
솔직한 피드백 문화는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라'라고 말하는 캡터로도 이어진다. '돌려치기는 당구장에서나 할 일이다'이라는 것이 리드의 생각이란다. 돌려 말하기는 사실을 왜곡할 때 쓰는 가장 흔한 수법이고, 아무리 돌려 말해도 직원들은 모두 눈치채기 마련이라는 거다.
넷플릭스에는 규칙 없다지만 원칙은 있다.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원칙은 규칙 대신 맥락으로 살렸고,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고 권한을 부여해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잘 설명하는 표현이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리드해라'다. 여기는 읽으면서 별표를 몇 개는 그려두었는데, 이 책 전반에 걸쳐 가장 기억하고 적용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무제한 휴가, 경비 제한 없음, 상사 승인 필요 없음 등의 핵심적인 '규칙 없음'을 뒷받침해 주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독창적인 사고를 부추기려면,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거나 점검표를 주고 확인란에 표시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꿈을 크게 갖도록 자극하고,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게끔 영감을 주고, 도중에 실수할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맥락으로 리드해야 한다.
맥락을 짚는 것이 통제의 리더십보다 까다롭지만, 실무진에게 자유를 준다. 물론 선제 조건은 있다. 넷플릭스 문화의 기본이 되는 인재 밀도. 이게 확보되지 않으면 별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맥락으로 리드할지 통제 리더십을 활용할지의 대한 첫 번째 결정은 '우리 회사의 인재 밀도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경험은 공유하는 순간 지혜가 된다. 빠르고 유연하게 성장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참고할 만한 포인트들이 많다. ‘이건 넷플릭스니까 가능했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원칙과 이를 실현하면서 겪는 시행착오가 아닐까.
요약하자면, 넷플릭스를 성공으로 이끈 조직문화는 이렇다. 솔직함을 키우고 통제를 줄여라. 규칙 말고 맥락으로 리드하라. 실패를 장려하되,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을 투명하게 공유하라 (선샤이닝).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것에 앞서 뛰어나고 비범한 인재를 확보하고 강화하라.
재미있는 기업 문화를 탐험했네 그려 :)
스타트업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도움이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