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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Jun 20. 2023

어떤 노동에 대하여

<쇳밥일지>를 읽었다

어떤 노동은 가혹하리만큼 따갑다. 일하는 환경은 위험하고, 땀 흘려 일하는 대가는 남루하며, 사람들의 시선은 답답하다. ‘뭐 해 먹고살지’는 모두의 인생 숙제이건만, 그 답을 몸을 쓰고 땀을 흘리며 찾은 청년들은 유독 그 존재가 왜곡된다. 또는 잊힌다.  


어떤 일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사회에서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며 거창한 꿈조차 없던 고3이 앞으로 살아갈 곳’은 '땀 흘려 번 돈이 고작 200만 원 남짓’인 세상을 말하기도 한다. 치열하게 일해도 가족이 생활하기 빠듯한 최소임금. ‘명문대생은 공부 많이 했으니 유능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전문대생은 공부 안 했으니 무능해서 못난 일만 한다.’라고 응당 생각하는 시선은 덤이다.



<쇳밥일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저 치열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는 에세이로도 볼 수 있는데, 마음은 왜 아무리 몸무림을 쳐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 궁핍의 굴레로 초점이 맞춰지는 걸까. ‘내가 누린 일상이란 그저 불행이 닥치지 않았기에 유지됐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산업 재해 경험을 읊조릴 때면, 그 조용한 속삭임이 오히려 더 큰 분노로 느껴졌다.


'어딜 가나 얼마 안 되는 승자들이 패자가 응당 가질 몫까지 몽땅 빨아들이는 현실만 알아갈 뿐. 스물다섯 살의 나는 일찌감치 사회에 투항했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라는 감정은 가장 게으른 감정이며, 마음의 비만과 같다'라고 얘기하는 저자에게는 슬며시 존경심까지 일었다. 본인을 둘러싼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비루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그 마음가짐의 원천은 대체 어디였을까.


우리는 부가가치에 매몰된 삶을 산다. 땀의 가치를 말할 자리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는가가 내 월급 및 사회적 계급을 결정한다. 단지 내 한 몸으로 땅을 일구고, 땀으로 일하는 노동은 어느덧 너무 평면적이어서 뒤쳐진 삶으로 존재감을 잃었다. 이 시대의 노동은 일도 치열하지만, 살아가야 하는 삶은 그보다 더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구절 중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아있던 내용은 한 입시 강사의 용접공 비하 발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었다. 온라인에서 한 수능 강사가 공부를 못하면 용접이나 배워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이 이슈가 되었고, 당시 천현우 작가가 일기에 남겼다고 소개한 문장 중 일부다.


한 입시 강사가 용접공 비하 발언을 했다고 한다. (…) 명문대, 번듯한 차림새, 이른 나이에 스타강사.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할 게 없는 이력이다. 곁눈질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기 삶만 일직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경쟁에서 지면 용접공 같은 패배자가 된다. 강사 개인 역시 그런 사교육을 받아왔을 터이고, 그걸 그대로 가르쳤다. 그렇게 해서 자신은 성공한 인생에 안착했으니까, 스스로 한 말의 문제점을 전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 발언 속에 담긴 건 우월감이 아닌 대학 서열화와 성적 경쟁의 부작용이었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할 게 없는 이력'. 이 말에 누군가가 생각났다. 자신의 삶만 바라볼 수 있어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불필요한 사람들. 굳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청년공'이 '펜을 들었다'라고 할 때 환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곁눈질해 주지 않으면 발견되기 힘들고,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으니까.


저자는 뒤이어 '나는 강사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빌려 튀어나온 세상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개인이 아닌, 우리가 분노하게 되는 어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맥락에선 그를 우러러볼 수 밖엔.


책을 읽는 며칠 사이에도 포털의 헤드드라인에는 공장, 건설 현장 등의 사망 사고 기사가 계속 보인다. 일을 하면서 집에 안전하게 돌아올 일을 걱정하지 않고, 땀의 가치가 조금 더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삶만 일직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주변을 바라보고 공감하는 능력이 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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