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주인공 토니는 본인이 '평균치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학교 생활도 그랬고, 우정과 사랑에서도 의심할 여지없이 그랬다. '평균치 인생, 평균치 진실. 평균치 윤리관'. 몇 명과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고, 손자도 태어났다. 이혼을 했지만 전 와이프와는 친구처럼 지냈고, 딸과도 원만한 사이였다.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똑같지는 않은 법'. 어느 날 토니는 편지 한 통을 받으면서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편지는 대학 시절 잠깐 만났던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토니 앞으로 두 개의 문서를 남겼다는 내용. 단 한 번 봤을 뿐인, 옛날 여친 엄마의 유산이라니. (이게 뭔...?)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소설의 시작이다. 토니의 학창 시절 및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바꿀 편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간, 역사, 기억에 대한 사유가 이어져서 소설인가 철학 책인가 의구심도 일었지만 (물론 이 점이 이 소설의 엄청난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스토리텔링의 힘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휘둘리지 않을 수가 없는 마력.
줄리언 반스는 이 소설로 2011년 맨부커 상을 수상했고, 2017년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냉장고 털이로 밥을 해 먹 듯, 몇 년째 책꽂이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책들을 구조하고 있던 터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나의 집 한구석에서 몇 년을 기거하고 있었다. 분명 너무 읽고 싶어서 샀던 기억은 나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그랬는지 떠오르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책을 집어 들고 뒹굴뒹굴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 있다. 나는 그 끝에서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앞으로 페이지를 되돌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대체 뭘 놓쳤던 거지. 소설책 커버에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으로 이끈다'라고 책을 소개하는데, 이 얼마나 이 내용을 잘 압축한 말인지는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깨닫게 된다.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했던 말과 함께.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우린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평균치'의 인생이라는 듯 자기 위안의 역사를 써 나가고 있을까.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고 왜곡된 기억이 조각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말이지, 반대로, 행복을 이끄는 기억의 재편과 착각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퍼펙트한 해결책인 걸까. 그렇다면 착각이야 말로 우리를 구원해 주려나.
기억의 왜곡, 착각, 나이 듦, 사색, 회한.
짧은 소설인데, 이런 주제를 어떻게 다 담아냈을까.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