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나 고양이는 본인이 쓸 물건을 직접 사지 못한다.
청년 정책에 관해선 청년도 그렇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청년은 없다. 정책의 입안부터 시행까지 청년은 오로지 수혜자이자 시혜자일 뿐이다. 마치 집에서 기다리는 반려동물처럼 그냥 주는대로만 받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정책에 나를 맞춘다.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일정 기간 이상 근속하면 청년과 기업, 국가가 같이 돈을 모아 약 천만원 정도 목돈을 만들어 주는 제도다.
이는 청년을 위한 제도일까 중소기업을 위한 제도일까. 아니면 정부를 위한 제도일까.
대한민국의 전체 일자리 중 중소기업이 82.9%를 담당하고 있다.(중소벤처기업부 2017) 그리고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들의 1년 이내 퇴사율은 약 30%에 달한다.(잡코리아 2020)
청년들이 왜 퇴사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단순히 오래 버티기만 하면 되는 이른바 '존버'전략을 제시했고 이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왔다. 직장에서 괴롭혀도 그저 버텨야만 했다. 청년들은 자유계약인에서 불평등 조약에 서명을 한 신세가 되었다. 안그래도 청년들에게 불리했던 근로계약이 완전 불합리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해당 정책에 지원했던 청년들은 불합리를 겪으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인생의 첫 회사부터 사회의 괴로움을 제대로 학습하고 있다.
이 것이 정말 청년들이 원했던 결과일까. 나를 스스로 노예로 만드는 전략을 채택할 사람이 있을까.
청년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잘게 파편화 시킨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정책에 나를 끼워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