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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May 09. 2021

요술봉과 분홍 제복

요술봉과 분홍 제복

- 세일러 문에서 헬렌 켈러까지, 여주인공의 왜곡된 성역할

사이토 미나코 지금, 권서경 옮김, 문학동네


 옛날, 말 그대로 옛날에 동생이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홍일점론' 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었다. 어떤 책인지 물어보았더니 남성성과 여성성을 사회적으로 재교육 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책이라고 했다. 당시에 내용이 참 궁금했는데 안타깝게도 일본어로만 된 책이라 감히 도전을 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계기로 다시 찾아보다 한글로 번역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을 짧게 이야기 하자면 (동생이 해준 설명을 많이 차용하자면) 남아들이 많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과학과 기술, 미래, 현실적, 우주적 배경 등이 특징으로 대표적으로 건담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아들이 많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사랑, 현재, 비현실적, 동네적 배경 등이 특징으로 세일러 문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여아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작품들에서 여성은 오로지 '홍일점'으로만 존재한다고 했다. 여성은 작품내에서 잉여로운 역할만 담당하며 남성들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성희롱의 대상으로만 존재 한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남아들에게 여성의 역할을 고정시키고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시킬 경향이 강하다. 특히 요즘들어 대두되고 있는 안티페미의 주장처럼 여성은 그저 '무임승차'를 하고 실력으로 선별되지 않는 '특혜'받는 이들이라는 주장과 미묘하게 비슷하다. 


 이는 최근 인권위에서 의견표명을 한 파란색-남아, 핑크색-여아와 비슷한 경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 하자면 남아들이 보는 건담과 같은 작품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주 평화와 같은 거시적인 목표로(실제와 같이 선, 악이 불분명한 세계 속에서) 레이저, 기계와 같은 진보적인 무기를 사용해 정의를 관철해 나간다. 여아들의 작품인 세일러 문은 작은 동네 안에서 싸우기 시작하면 당장 벗어던지고 시작할 것 같은 같은 짧은 치마와 하이힐을 신고 요술봉을 휘두르며 마법과 같은 비현실적인 도구를 가지고 쌈박질을 해댄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인공 여성이 위기에 빠지면 꼭 멋지고 잘생긴 남성이 나타나 멋지게 도움을 주고 사라진다. 결국 여성은 남성의 도움 없이는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위인전에 등장한 여성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데 나이팅게일, 잔다르크, 퀴리부인, 헬렌켈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현실에 등장하는 여성이 어떻게 애니메이션의 히로인이 되어 가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던 사이 그 여성들은 어떻게 남성에 의해 '성녀' 혹은 '악녀'가 되어 가는지 다루고 있다. 


 여성은 아동을 위한 작품 속에서 '성녀-악녀'의 이분법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을 저자는 무려 1998년에 시작 했고 이러한 주장은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보인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지금처럼 작은 고추들이 모여 애써 보려 해도 잘 찾을 수 없는 그것을 애써 치켜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실이 등장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전반부에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해 지식이 없다면 읽기가 조금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작품들을 몰라도 큰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으니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특히 당신이 일본 고전 애니메이션 오타쿠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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