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모이자 장애를 연구하는 학자 아빠의 고찰(1)

#26

by 복지학개론

오래전부터 장애인은 존재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좁은 지역에서 넓은 지역으로 확장하던 시기가 있었고, 확장에 필요했던 노동력 즉, '력(人力)'은 매우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행동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은 당시 지배력을 가진 특정계층에게 배제되었고, 희생을 당했다.

고대의 많은 사료를 살펴보면 폐질인, 소인 등은 학대의 표적이 되었고 마치 짐승처럼 실험에 동원되거나 강제노역 등을 당하며 고통속엥서 살아야 했던 엽기적인 행태들이 기록되어 있다.

서양의 대표적 기록은 스파르타 시대와 로마시대를 들 수 있는데, 태어난 아기가 장애 증상을 가지고 있으면 들판에 버렸고 살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의 여가놀이문화였던 콜로세움의 검투사의 활약을 돋보여줄 수 있는 실험체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장애인을 '신에게 버림받은 존재'로 단정하며, 마녀사냥을 통한 고문과 화형 등을 통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었다.


gladiator-1931077_1920.jpg 사진 출처 : pixabay


그나마 장애인들이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일련의 보호장치는 '종교단체의 선행'이었지만, 이마저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장애인들이 수용 보호되던 시설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더욱 비참해지는 경향이 발생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며 '계몽주의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사상은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단정 지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완전히 구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비장애인은 완벽한 인간인데 반해, 장애인은 생물학적으로 부적절한 생명체라며 의학적 구분을 짓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상에 기초하여 전문가가 장애인의 치료를 담당하면 장애는 치료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만일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사회적으로 집단 수용시켜 완전한 분리를 시킨 뒤 비장애인의 지시에 따를 수 있는 능력을 만들기 위해 훈련을 제공(?)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었다가 전문가의 치료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치료될 수 있는 존재로까지 인식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전문성을 둔 오늘날의 치료기법이라기 보다 뒤떨어지는 치료였겠지만 그래도 장애인을 사회로 복귀시키고자 시도하는 모습이었기에 어느 정도 의의를 둘 수 있겠으나 인권보호가 바탕이 된 치료와 훈련은 아니었다.


section-2714597_1920.jpg 사진 출처 : pixabay


우리나라의 장애인 역사를 살펴보면 슬기롭고 지혜로우며 인정이 넘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만 봐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장애인이라는 표현이 없던 터라 중국에서 사용했던 표기를 따라서 '잔질자, 독질자, 폐질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 시각 장애인의 경우 점복과 독경, 음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생활을 지원했고, 혼자 사는 나이 든 장애인에게는 오늘날의 활동보조인과 비슷한 부양자를 제공하는 등 장애인정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걸 알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시각 장애인 단체도 존재했는데 나라에서 주관하는 기우제나 질병 치료 같은 행사에 참여도 했다. 이 단체의 이름은 '명통시明通寺'이다.

서양 장애인 역사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장애인 역사는 존중과 자립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둔 정책을 펼쳤다.

19세기에 들어 서양에서는 생물학적 진화론을 바탕으로 개인의 신체적ㆍ정신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우생학이론'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장애인의 삶이 위협받게 되었다.




사람을 인식적ㆍ의학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했던 시기


우생학이론 또는 사회진화론은 장애인을 사회발전에 불필요한 존재로 단정 지으며 장애인을 철저히 사회와 단절시켜 버렸다. 장애인을 부정적인 시각의 대상으로만 취급하게 만들었고 장애인을 기능적 한계와 연계시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우생학이론을 통해 장애인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비생산적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와 함께 장애인의 혼인은 불가능 했으며 자녀의 출산은 엄격히 제한되면서 장애인은 비장애인 사회에서 완전한 차별을 받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그동안 인식적 구분으로 분류하던 장애인을 의료적 구분으로 분류하자는 주장들이 나타나게 된다.

제1차와 제2차로 진행된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 중 부상을 당한 군인들이 장애인이 되기 시작하자 '비장애인도 언젠가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war-2930486_1920.jpg 사진 출처 : pixabay


장애인이 된 군인을 위한 법제정과 재정지원, 시설투자, 재활 프로그램 개발 등이 증가하면서 우생학이론에 입각했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사그러들게 되었다. 또한 전문 치료와 재활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학적 기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주장이 학계에 보고 되는 등 기존과 다른 장애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국제적으로도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발표를 서두르는데, 1948년 국제연합(UN)은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인간에 대한 하나의 윤리 기준을 세우기 위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게 된다. 이는 곧 1975년의 국제연합 총회에서 결의된 '장애인의 권리선언'을 발표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 선언문 안에는 '장애인이라 함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불완전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자기자신으로서는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고,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국제장애분류(ICIDH)'라고 하는 장애에 관한 개념적 틀을 발표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장애인을 개념에 맞게 분류할 것을 권장하기에 이른다.




장애인을 뜻하는 단어(용어)


1980년 국제장애분류가 발표된 후, 우리나라 정부도 당시 전무했던 장애인 관련 복지와 관련된 법을 제정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사실 장애인 관련 복지법이 제정되게 된 배경에는 1988년 치뤄질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이상 국제적으로 정책, 제도, 도시의 발전수준 등이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을 예상한 정부의 대처였기도 하다.


olympics-1613101_1920.jpg 사진 출처 : pixabay


장애인에 대한 표현도 없었던 당시, 주변국의 장애인 관련 복지법을 참고하며 억지로(?) 만든 법이 탄생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관련 복지법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본격적 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1년 제정된 법령이름만 봐도 장애인이 아닌 '장애자'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장애인을 부르는 단어에는 '장애자, 장애우, 부유자, 박약아' 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 일본식 한자표기로 사용하기 부적절한 표현들이다.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에 대한 개정작업이 있었고, 이때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장애인복지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와 함께 장애자로 표기된 모든 법문과 행정문서는 장애인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다. 이와 함께 '장애인 등록제도'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구에 대한 관리와 체계적인 서비스 제공이 본격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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