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자녀가 장래희망을 결정함에 있어 보호자의 영향력은 상당할 거란 생각을 해본다.
성장기의 아동이 보는 세상의 대부분은 가정과 유치원, 학교 등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자신의 멘토를 결정함에 동일한 성별의 보호자를 선호한다.
즉, 아들의 경우 아빠의 모습을 보며 성장하고 딸의 경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성장하기에 개별적 장래희망이 생성되게 된다.
정신분석이론을 주장한 프로이드는 사람은 4~5세에 동성의 부모와 동일시하는 과정 속에서 도덕적 의식이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부모 의지형' 장래희망이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가 있다.
지난 2015년도, 전남교육정책연구소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의 선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스스로 장래희망을 결정한다'라고 응답한 학생이 46.9%였고, '부모님 의견을 참조한다'라고 응답한 학생은 27%, '선생님의 권고'라고 응답한 학생이 5% 순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이처럼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는 세대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장래희망을 결정하는 자녀의 모습은 대견할 수도 있지만 잘 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항상 곁에서 올바른 조언을 해줘야 할 것이다.
간혹, 부모의 한마디 조언은 자녀의 장래희망을 포기하는 일도 벌어지긴 하지만...

"모든 결정은 너의 몫이야!"
큰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였다.
유치원에서 '자녀의 미래의 꿈 발표'라는 제목으로 수업을 하는데 보호자 중 한 명은 반드시 참석하라는 지시 아닌 지시가 떨어졌었다.
마침 큰 아이의 발표회 날은 둘째 갑자기의 언어치료 날과 겹쳤기 때문에 집사람은 참석이 불가능했고, 부모가 참석이 힘들면 조부모가 참석해되 된다고 했지만 우리 집과 근접해 살고 계셨던 큰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각자의 스케줄이 있어 참석이 불가능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바로 나 하나다.
다행스러웠던 건, 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내가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교 내의 부설 유치원이었고 나의 강의 날짜와 같은 날이었기 때문에 참석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진로는 자기가 알아서~"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우리 큰 아이가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훗날 미래에 무슨 직업을 갖게 될 것인가란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잘 못된 흐름이었지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교과목을 배워야 했고 교과목 안에서 일정 점수만 맞으면 진학을 했으며, 진학한 대학에서는 적성에 맞지도 않은 전공을 선택한 뒤 억지로 꾸역꾸역 직업을 가지던 시대가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특별한 재능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먹고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인걸 감안한 '무(無) 걱정'이었을지도.
큰 아이의 발표회 날이 찾아왔고, 강의를 끝마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큰 아이의 유치원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살짝 늦게 도착은 했으나 이제 막 발표회를 시작하고 있었고 발표순서를 기다리는 꼬맹이들 사이로 큰 아이가 보인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빠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본다.
"아빠 왔어~ 아들."
"씨익."
큰 아이도 나를 보더니 긴장했는지 굳어있던 표정이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며 미소를 보인다.

"아들, 아빠 왔어~"
우리 아들의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고, 앞서 발표를 하는 꼬맹이들의 야심 찬 꿈 발표를 경청하게 되었다.
"저는~ 사람들을 구해주고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고 도움이 필요한 시민을 지키는 경찰관이 되고 싶습니다!"
불을 끄고, 치료해주고, 혼내주는 등의 정의구현 직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나이 때에 누구나 한 번은 꿈꿔보는 미래의 꿈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엉뚱한 아이도 있었다.
"저는~ 의자가 되고 싶어요!"
"의자? 너는 왜 의자가 되고 싶니?"
"힘들도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쉼터와 같은 존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엉뚱한 녀석~ 하하하!"
자신의 꿈이 의자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그 이유를 물었고 이유를 답한 아이의 답변에 그 자리에 참석한 보호자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나 혼자 느꼈던 생각일지 모르지만, 방금 발표한 꼬맹이는 미래의 '사회복지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스카우트 제의를 해야겠군."
그리고 드디어 우리 아들의 발표할 순서다.
우리 아들은 과연 소방관, 경찰관, 의사 중 어떤 꿈을 꾸고 있다고 발표할까?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저는~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엥? 고고학자? 이게 뭔 소린지...
느닷없는 큰 아이의 고백에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지만 나만 혼자 무표정으로 발표를 하고 있는 아들을 쳐다봤다.
"아니, 무슨 뜬금없이 고고학자래?"
이렇게 혼잣말을 하던 중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큰 아들이다.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와 같은 지구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이유로 지구에서 공룡이 사라졌는지 반드시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유별난 놈..."
그렇게 발표회가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큰 아이와 손을 잡고 내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빠, 내 꿈 어땠어?"
아들의 질문에 나는 좀 신선했다는 대답을 해주며 다른 아이들처럼 정의구현을 할 수 있는 꿈을 꿔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니, 나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 특히 프테라노돈(익룡)에 대해 연구할 거야!"
자신 있게 말하는 큰 아이를 쳐다보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춘 뒤 대답했다.
"그래, 뭐든 해 봐! 아빠가 적극 도와줄게. 꿈이 없는 것 보다야 뭔가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진 게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이게 너의 첫 꿈이잖아."

"넌 할 수 있어, 큰 아들!"
자동차에 타고 집으로 향하던 그때, 아들이 나에게 질문한다.
"그런데, 아빠는 무슨 일을 해?"
"응? 너 아빠 무슨 일 하는지 몰라?"
"장애인 도와주는 사람."
"또?"
"교수."
"또?"
"음... 몰라."
나도 내 직업이 정확하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들이 또 질문을 던진다.
"아빠는 공부 잘했어?"
"왜?"
"교수가 뭔지 몰라서 선생님께 물어봤는데 공부 잘해야 될 수 있는 거라고 해서."
"그래? 선생님이 그렇게 알려주셨어?"
"응."
그... 그랬구나. 공부 잘해야 될 수 있는 직업이 교수였구나...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아들의 말을 듣고서야 아들이 물어본 나의 직업에 대해 대답할 수 있었다.
"아빠 직업은 말이야, 공부를 잘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고 오~ 래, 오래 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야."
"오래?"
"응... 아주 오래. 너 학자가 꿈이라고 했지?"
"응."
"분야는 다르지만 아빠처럼 학자가 되려면 공부를 아주 오~ 래 해야 해. 특별히 천재가 아닌 이상."
"......"
"너의 첫 꿈이니까 열심히 공부하렴(오~ 래)."

"말... 말도 안 돼..."
큰 아들은 내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고학자의 꿈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