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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지학개론 Jul 22. 2020

이라크의 쿠웨이트불법 침공걸프전쟁

미국의쇼케이스 장이었던걸프전


1990년 8월 2일.

침공은 새벽에 일어났고 너무나도 순식간이었다.

이라크 최정예 군인들은 기습적으로 쿠웨이트를 공격하며 수도인 쿠웨이트시티까지 다가갔다.

쿠웨이트 국왕을 피신시키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국왕 수비대는 몰살을 당했다.

그리고 6일이 지난 후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대해 합병을 선포하고 쿠웨이트는 지구 상에서 사라져 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중동에 위치한 ‘페르시아만’에는 다양한 국가들이 몰려 있습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가진 건 원유밖에 없는 자원 부국들이 즐비하죠.

이렇게 풍부한 원유를 많이 보유한 국가들이기에 항상 평화로울 것이라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매우 위협적인 지역이죠.

우선 종교 등으로 끝나지 않은 채 잦은 전쟁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특히 1990년대 당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죠.

8년간 이어진 이란과 이라크의 보이지 않는 분쟁들과 종교적 차이로 인한 전쟁이 종전된지도 얼마 되지 않던 해이기도 합니다.

이란에 대한 이라크의 선재공격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이라크가 득을 챙겼다면 오히려 날 뻔했지만 이라크는 패배한 전쟁이었기에 그 피해는 상당했죠.

전쟁비용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은 어려워진 자국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또다시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확인되지 않은 원래 하나의 국가였다며,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쿠웨이트 침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는 당시 세계 군사력 4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죠.

특히 미국은 친미 성향이었던 쿠웨이트를 반미 성향의 이라크가 침공 후 합병 결정에 분괴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1988년 종전된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에서 이라크에게 암묵적 1등 후원자 역할을 하던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이란을 견제하며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이라크의 전쟁 패배로 미국은 할 말이 없어졌죠.

동시에 이라크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던 영국과 프랑스도 난감해진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기습침공으로 단 일주일 만에 쿠웨이트를 합병하기에 이릅니다.

미국은 당장 쿠웨이트를 반환하지 않으면 큰 후회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말하며 이라크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을 지켜보던 국제사회에서 패배자 미국은 더 이상 최강의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고 이는 이라크의 지도자 후세인도 같은 생각이었죠.

때문에 후세인은 미국의 압박에 대해 전혀 위협을 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발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당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배치시키고 우방국들에게 군대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다국적군을 구축하고는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때 사용된 작전명인 ‘사막의 폭풍 작전’은 미국의 최신형 무기들의 ‘쇼케이스(Showcase)’와도 같았죠.

5,000여 대가 넘는 이라크의 전차들은 아파치 공격헬기와 A-10 썬더볼트에게 맛있는 간식과도 같았고, 이라크의 미사일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방어망을 뚫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세계 5대 방공망을 자랑하던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순식간에 붕괴되며 미군의 화력을 버텨낼 수 없었죠.

이라크는 더 이상 쿠웨이트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도망칠 군대도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의 이라크는 미국의 식민지와 같았습니다.

이라크의 모든 경제는 미국 통제를 받게 되었으며, 반미 행동이 일어나면 페르시만에서 대기하는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F/A-18과 지금은 퇴역한 F-14가 가만 놔두지 않았죠.

미국은 걸프전쟁 이후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최강국으로 인정을 받는 기회와 이라크에 대한 전쟁 보상으로 큰 이득을 챙기게 됩니다.

사실 이라크의 지도자 후세인이 실수한 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남베트남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것이지 북베트남을 파괴하기 위한 전술을 펼치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파괴하기 위해 공격하는 미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죠.



아무튼, 쿠웨이트는 미국을 선두로 하는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다시 국가의 평화를 얻었고 이라크의 후세인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진 빚을 침략이라는 전쟁으로 메꾸려 했던 이라크의 잘 못된 오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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