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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지학개론 Jul 20. 2020

쇄국정책 조선과세계 최강미국의 전쟁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한창이던 1866년, 미국 상선이 총과 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양에 살고 있는 무고한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게 되자 이를 응징하기 위해 상선에 접근해 불을 지르고 상선에 탑승한 선원들을 죽이게 된다.

이게 바로 조선과 미국의 전쟁(한미 전쟁)인 ‘신미양요(1871년 6월 1일)’가 일어나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고야 말았다.     



당시 동북아시아는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침략의 야욕을 노리고 있던 시대였죠.

조선은 청나라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는 것을 보며 언젠가 자신들도 청나라 꼴이 될 것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할 거란 소문도 돌고 있던 터였죠.

조선의 수군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백인들의 배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동영상 내용 중>


그런데!     


1854년 미군은 일본의 항구를 개방하게 만들었고 중국은 그보다 빨리 개항을 하기에 이르죠.

그러다 드디어 미국 상선이 강화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 상선의 이름은 ‘제너럴셔먼호’였으며 조선에 개항을 강조하고 있었죠.

하지만 조선은 그럴 생각이 단 1도 없었습니다.

여러 번 무역에 대한 협상이 결렬되자 제네럴 셔먼호 선주는 조선에서 더 높은 고위직 관료와 만나길 희망했고 비가 많이 내려 불어난 대동강을 타고 평양으로 향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런 항해는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았던 대동강 물이 수위를 회복하자 꼼짝없이 이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죠.

며칠을 강 가운데 가치게 되자 선원들은 불안했고 화풀이를 하듯 대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자 조선의 분노는 극에 달했죠.

제네럴 셔먼호 주변으로 기름이 잔뜩 실린 작은 배를 보낸 뒤 불을 질렀고 탈출하려는 선원들을 향해 화살을 발사합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전원 사망하였고 제네럴 셔먼호는 침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소문으로만 돌던 프랑스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병인양요’라고 부르죠.

프랑스가 조선을 침공한 이유는 종교를 탄압한다는 이유였으며, 강화도가 프랑스에 의해 함락되고 맙니다.

사실 프랑스가 조선을 침공한 이유는 종교탄압이 주된 이유는 아니었죠.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항구를 개항시키기 위한 게 진짜 이유였으니, 당시 흥선대원군의 정책이 조선을 참으로 힘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는 청나라에 조선의 개항을 설득해 보라고 요청하지만, 청나라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동영상 내용 중>


프랑스는 조선의 쇄국정책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프랑스는 ‘외규장각’에 보관된 조선의 주요 서적과 보물들만 약탈한 채 청나라로 철군을 합니다.

모양새는 조선이 프랑스를 물리친 것처럼 보였으나 조선에 대한 침략에 대해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이란 판단으로 프랑스가 철군한 것이었죠.     



하지만!     


1871년, 5년 전에 있었던 ‘제네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군이 다시 강화도를 찾습니다.

미국은 원정을 위해, 500명 이상의 선원과 해병대 100명으로 구성된 650명의 병력을 조선으로 급파하였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광성보에서 3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조선은 미군의 강력한 화력을 버텨낼 수 없었죠.

바로 미국이 한반도를 침략한 ‘신미양요’가 발생한 것입니다.

강화도는 또다시 서방의 국가에게 함락되었지만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며 더욱 강력하게 쇄국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피해를 보고 있던 조선이 강력한 결사항전의 뜻을 보이자 미국은 더 이상의 소득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포로를 풀어주며 자진 철군하기에 이릅니다.     


<동영상 내용 중>


그래서!     


신미양요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미국과 벌인 전쟁이었습니다.

역사는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지만, 당시 서방 세계의 침공을 어렵고 힘들게 막아낸 우리의 슬픈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 스스로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거절한다면 언제든 예전처럼 비슷한 시련과 고난은 또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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