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지음 Nov 10. 2020

깨달음

와 닿는 구절들을 적다 문득 손을 보게 됐다. 잔뜩 힘을 준 채로 펜 앞머리를 잡고 있는 다섯 손가락. 힘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종이와 대결이라도 하듯, 하는 거에 비해 엄청난 힘을 들이고 있었다. 그 힘을 못 이겨 긴장한 어깨와 목에 통증까지. 글자를 옮기는 과정이 너무 전투적인 거 아닌가. 과하게 눌린 탓에 잉크가 달아나 건조한 글자들. 어쩌면 필사가 나에겐 그다지 이롭지 않은 취미일 수도, 문득 손을 보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엄지 두 개로 조립하는 기록이 더 괜찮을 수도 있다. 종이 낭비도 줄이고 나무도 살리고. 무엇보다 안 그래도 많은 긴장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문구 코너를 가면 아직 새 것 같은 수첩이 있어도 늘 필요한 듯 기웃거린다. 고작 삼분의 일 정도 채우는 게 최선이면서도. 고등학생 때는 스크랩을 좋아해 기록을 곁들여 끝까지 채운 수첩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내고 다시 같은 걸 기록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첫 장 쓰기가 점점 망설여진다. 이 망설임에 내 피로감도 있었겠다고, 문득 손을 보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