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뿐이라, 그대 뿐이라.
겨울이면 아버지가 차에 낀 성에를 긁어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입김이 뿌옇게 얼굴 주위로 아른대서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여요. 얼마가 걸리든 서서 아빠가 움직이는 걸 보는 게 좋았습니다. 이제와 하는 말인데 누가 무어든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면 괜히 좋았던 것 같아요. 제 어릴 때만 해도 재떨이가 집안에 떡하니 놓여 있었는데요. 담배를 피우면서 멍하니 앉은 모습마저 좋아했어요. 코는 아리고 눈이 매웠지만요.
그때엔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보단, '세상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컸어요. 소리내거나 움직이는 대상을 보며 마냥 신기하고 두렵고 하려니, 심심할 틈이 없지요. 싱싱한 풀잎 한 무더기를 모아 놓고도 흐뭇한 겁니다. 부서지는 흙으로 만든 그릇에 옮겨서 누구에게든 뽐낼 수 있었어요. '엄마 이거 좀 봐, ' 모든 게 금세 흐트러져도 괜찮았어요. 이젠 돌을 모으는 중이니까요.
날이 차든 덥든 상관하지 않았어요. 지금처럼 푸념은 안 했다는 겁니다. 올 해가 얼마나 추울지, 더울지를 예측하려 들지 않았지요.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어요. 아이 웃음이 해사한 건 그리 가볍게 살기 때문일까요.
요샌 어른처럼 사는 아이가 많은 줄 알아요. 엄마고 보니 주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학원을 다니는지, 집에서도 얼마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지 듣게 됩니다. 지혜가 아닌 지식을 넣기 바쁘지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고 있어요. 도입부에서 꼭 제 생각과 같은 이야길 합니다. 눈부신 인류의 발전에 '지식'쌓기가 유효했다면, 우리의 지혜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를 물어요.
삶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묻기보단 전투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에요. 전체를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개인을 봐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성취와 성과, 돈, 유명세는 제 어릴 때 기억처럼 나타나고 사라질 것들이에요. 즐기고 맛볼 음식 중 하나인데 삶을 매달지 않았으면 해요.
유명하고 돈이 많으면 정말 좋기만 할까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구름 위에 오른 행복감을 느끼리라는 건 혹시 완전한 착각은 아닐까요.
생생하게 오늘을 사는 건 어때요? 풀잎이나 돌멩이를 한 데 모아 기뻐했던 그날처럼, 무어든 열중해도 좋아요. 나는 그런 그대 모습이 참 좋습니다. 대신 '반드시 해야만 해'라며 다그치지 말기로 해요. 살며 꼭 해야만 하는 건 없다는 걸 잊지 마세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