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조건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삶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 누구가 아닌 스스로에게 내지르는 말이다.
40대 중반에 다다른 남편의 형이 25살 베트남 아가씨를 데려왔다. 순간 구입했다는 표현을 쓰려야 쓸 수 없었지만 돈을 주고 사 오나, 돈을 받고 팔려오나 그 씁쓰름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일전에 결혼을 일생일대의 '사업'이라고 표현한 전문가가 있었다. 크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연애는 사랑이지만 결혼은 사랑 이면에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진을 치고 있다. 물론 그 안에 사랑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보통 사업 파트너를 구할 때 같은 점을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조건이 다를 수 있다. 반드시 상대의 투자력이 아니라 성격, 재미를 따지는가 하면 특정한 요소에 크게 점수를 매기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의 경우(결혼에 앞서) 재력보다는 술을 마시지 않을 것, 성실할 것, 말이 많지 않을 것 이 세 가지가 무척 중요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요소들이 충족되었을 때,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다른 요소들을 쉽게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때 잠시 미쳐서 결혼을 결심했는지 모르겠다며 인연이라 넘겨짚지만 대부분 자신이 결혼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점을 충족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아주버니를 따라온 베트남 아가씨를 보며 많은 생각이 일었다. 같은 여자로서, 딸의 엄마로서 왠지 모르게 안타깝다 여기는 동시에 그는 그로서 중요하다 '믿고 있는' 무엇인가를 충족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형님'을 보아하니 그 적의 내가 그러했듯 20대의 발랄함이 가득했다. 그로 말하자면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 와서 집에만 처박혀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 고역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름시름 앓는다더니 배탈이며 독감이며 몇 날 며칠 열이 나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한 달여 만에 얼굴을 보았을 땐 제법 살이 불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속 집에서 베트남어로 방영하는 유튜브를 보며 먹고 누워 지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창살 없는 감옥이다. 참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게도 나 역시 스스로 조건이 맞는 남자에게 시집온 뒤로 같은 마음을 느낀 바 있다. 살던 동네가 아닌 곳으로 이사온 데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딱히 누굴 만날 일도 나갈 곳도 알지 못했다. 그는 더할 것이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오죽할지 싶다. 무엇을 위해 이 먼 곳에 옥살이를 하러 온 건지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 몇 년 전, 회사 업무로 베트남에서 건너와 지내는 몇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한국 남자가 업체를 통해 그 집안에 지불하는 돈이 그 나라에서 제법 큰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일주일이고 동네잔치를 벌인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집안에 딸이 있는 경우, 몸을 팔게 해서 돈을 버는 일들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러니 저러니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이 도리어 살 길을 찾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가 '형님'이라면, 만일 내가 베트남에 태어났다면 나는 과연 타국으로 돈을 받아 넘어가길 소망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왠지 모를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살아가는 날들, 불편한 언어, 익숙하지 않은 날씨와 길거리를 떠올리자 그것들과 맞바꾼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편안한 감옥이냐, 더러운 자유냐 둘 중 하나라면 악을 쓰더라도 더러운 자유를 선택하리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고야 만다.
남편과의 결혼이 혹은 누군가의 이혼이, 베트남 아가씨의 국제결혼이, 어떤 잣대를 가지고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확실하게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삶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이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남이 될 수 없으니 이런 나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가진 게 적더라도 남보다 못하게 살더라도, 손가락질받더라도 중요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한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도록 한다. 주는 밥을 배불리 먹고, 예쁜 옷을 걸치며 곱게 곱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먹을 게 없더라도 굽신거리지 않으며 걸친 게 없어도 당당한 삶을 살아갈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가족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한국으로 넘어온 여자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들에게 그 돈이 득이 되는 일일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의 가치는 고작 '돈'을 보태야만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들의 희생정신을 매도하려는 뜻은 없으나 사랑을 물질로 착각할 때, 애틋한 마음만큼이나 숭고하게 그 사랑을 이해하는 일이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물질(돈)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겠다. 이미 넘어오기로 결정했고, 선택했다면 다음 일은 간단하다. 더는 돌아보지 않고 지금부터의 삶에 나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혼한 것을, 이혼한 것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했음을 명백하게 알고 누군가의 잣대에 휘둘려선 안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언제나 나임을 알아차리고 더는 자신을 무엇에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