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가 칭송하는 '태산 같은 어머니'뒤에 가려진 빈집 같은 몸을 떠올렸다. 바람이 새어들어 시리고 아귀가 안 맞아 삐걱거리는 몸. 위대한 모성을 지탱하느라 신체가 헐겁다. 모성을 드높여 찬양하는 미사여구보다도 그 밑에 깔린 몸의 고통을 직설하는 언어가 절실했다.
김은아-한국 강사신문 칼럼
어젯밤 꿈에 셋째 아기를 보았다. 꼼지락거리는 입술을 떼어 '엄ㅁ'라고 말했다. 처음 아이를 가지고 엄마라고 불릴 때가 생각났다. 왜인지 낯선 느낌은 금세 휘발되고 본래 이름인 양 찰싹 귀에 달라붙었다. 뒤돌아서면 '엄마' 화장실을 갈 때에도 '엄마' 뭐 좀 할라치면 그놈의 '엄마'소리가, 귀신같이 따라다녔다.
쌍둥이나 다름없는 아이 둘을 카시트에 태워 친정으로 달려갔다. "나 참, 엄마는 어떻게 애를 셋이나 키웠대?" "그 시절엔 다 그랬지 뭘~ 하나 더 낳을걸, 이제 와서 아쉽다." 엄마는 나의 아기를 애틋하게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그 표정에 멈칫, 내가 아기를 보며 짓는 표정이 엄마와 닮았음을 느낀다. 작은 아기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지혜를, 권위를 올려다보았던 기억. 나이가 들며 조그라든 주름살과 함께 자꾸만 작아지는 몸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시절이 그랬다지만 아이 셋을 키우며 보통이 아닌 시집살이를 해낸 여린 나의 어머니, 기어코 집밥을 해 먹이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차에까지 따라 나오신다. 먼 동네로 시집간 둘째 딸이 아쉬웠을까, 그날엔 나도 엄마도 울음을 삼키며 손을 흔들었다. 참을 것이 무어라고, 다음부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