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나눴다. 앳된 선생님은 애써 웃음 지으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딸의 특별한(?) 학교 생활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듣기 싫은 수업이 있을 때 부러 보건실을 가겠다고 손을 들어 나간다던지, 쉬는 시간에 풀을 관찰하다 늦게 들어오는 일, 친구와 다툴 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일 학교 등굣길에 공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다는 친구의 증언까지. 이제 10살이 된 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비행 청소년이 떠오를 법한 행실이었다. 언짢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일편으로는 딸의 학교 생활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나처럼 생일이 빠른 딸은 금세 동생을 보았다. 어릴 적부터 어휘력이 남달라 발음은 물론, 그가 쓰는 단어들의 범위에 어른들은 혀를 내두르곤 했다. 아장아장 걷는 시절부터 읽어준 책들이 쌓여 하나 둘, 빼곡하게 집안 벽면에 책장을 채웠다. 아이는 일찍이 영어에도 능통했다. 물론 그를 키워주진 않아 제풀에 꺾였지만 딸이 지닌 언어에 대한 감각은 살아 있을 것을 안다. 한 번도 앉혀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6살부터 한글을 읽기 시작하더니 7살이 채 되기 전에 글을 쓰고 책도 혼자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일을 하는 엄마라서가 아니라 애초에 가진 느긋하고 덤벙이는 성격으로 아이들이 흘리는 밥풀, 참기름을 쏟고 노는 난장판 속에서도 침착하게 할 일을 해나갔다. 이야길 헤치고 재차 설명하자면 조금은 방임에 가깝게 자유로이 아이들을 키웠다. 특별하게 무척이나 위험한 일을 제외하곤 (집에서의)벌이는 일을 허하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주위에선 도인이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자유분방한 딸이 그런 내 탓이 아닐까 죄책감을 실어봤지만 한 살 터울로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둘째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릴 적 위용 있는 어른들 아래, 예의를 강요받으며 자랐다. 귀가 어두운 엄마는 잔소리가 심하지 않았으니 그 점에서 지금 나의 양육방식이 묻어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 편으로 나는 밥 먹을 때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숟가락을 드셔야 했고, 남자는 부엌에 가선 안되었고, 어른 앞에 함부로 엎드려 누워 있어선 안되었다. 권위 있는 아빠와 그보다도 엄했던 엄마 아래서 엄살을 피우거나 '하기 싫다'는 말을 내뱉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속으로 삼키는 그 버릇이 사회생활에도 옮아 갔으니 학교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를 다닐 적에 내 별명 중 하나가 '오버걸'이었는데, 무엇에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해야만 하는 자발적인 공부 빼고는 학교 생활 중 벌어지는 어떤 활동에도 오버스럽게 열심이었다.
둘째는 꼭 그런 나를 떠올리게 한다. 말이 별 없는 아이라 아들인 특성을 감안해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온 어느 날, "엄마 나 유치원이 힘들어."라고 말했다. 워낙 종알거리는 딸이었다면 그리 놀라지 않았을 테지만 둘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면 새삼스러울 일이었다. "왜?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사실은.. 그 우리 무슨 발표회 때문에 연습하잖아. 매일 춤 연습하는 거, 그게 힘들어 엄마."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고 공감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방에 들어가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윤우 엄마입니다." 선생님은 차분히 나의 이야길 들으셨다. 내가 놀랐던 만큼이나 선생님도 무척 놀란 듯했다. "어머 어머니. 정말요? 그만 쉬라고 해도 윤우는 정말 열심히 해서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제가 이제 쉴래냐 물어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서 연습하거든요!"
그로 1년 즘 지났을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잘 놀고 왔어? 즐거웠니?" "응 엄마. 유치원 재밌는데 밥 먹을 때가 좀.."
"응? 밥이 맛이 없니?" "아니, 밥은 맛있는데 국물까지 다 먹으려니 힘들어서." "남기면 되잖아 윤우야~" "선생님이 남기지 말라고 하셨어. 근데 밥 먹는 것 때문에 유치원 가기 싫어.." 한창 아이를 토닥이고 안방에 들어가 조용히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꾀꼬리처럼 맑은 목소리의 담임 선생님이 옥타브 높여 전화를 받으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니~무슨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윤우가 오늘 유치원에서 밥 먹는 일이 힘들다 해서요~" 들어보니 선생님은 으레 하는 말처럼 식사 전에 남기지 말고, 편식하지 말자는 이야길 하실 뿐이었고 아들은 철떡 같이 그를 지키느라 힘들어하는 거였다.
하라고 하면 싫은 마음 꾹꾹 눌러 담아 최선을 다했던 둘째와 나는 그런 점에 참 많이 닮았다. 사람은 환경에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글쎄. 형제가 너무도 다른 집은 우리 집만이 아님을 안다. 하다 못해 권위 높은 어른들에 둘러싸여 자라난 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 역시 제가끔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유별난 나의 딸과 나름 독특한 아들 역시 누구 때문이라 단정 지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로써 죄책감을 씻는 과정은 끝이 났을까. 아닐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내 탓을 하며 딸의 유별난 성장 과정을 함께 할 것이다. 다만 다짐하는 것은 싫은 것을 못 견디고 좋아하는 것에 빠져 버리는 딸에게, 그를 감추거나 누르지 않고 (선생님 표현 따라)'영특하게도' 이용하는 딸의 면면을 반드시 나쁘게만 보지 않겠다는 것. 분명 사회생활의 누가 될 수 있는 지점이지만 그는 그로서 좋은 점으로 살려내길 희망한다. 우리가 가진 단점 혹은 장점은 반드시 일면만을 가진 점이 아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나는 딸을 믿고 사람을 믿는다. 어제는 손가락 걸고 딸과 약속을 했다. 싫은 일을 참고 해야 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에 대하여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