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여성이었지?
나는 스스로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그 감정에 대해 글을 적으며 비참함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이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이 밀려든다. 나의 첫 키스는 9살 때였다. 동생과 함께 동네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언덕 위로 군모가 떠오른다. 머리부터 얼굴, 듬직한 어깨를 지나 군화까지 얼마지 않아 낯선 군인 아저씨가 우리 앞에 섰다. "어디 가는 길이야? 몇 살이니?" 해맑게도 나는 "얘는 내 동생이고 6살이에요. 저는 ㅇㅇ국민학교 2학년이고요."라고 대답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저씨는 겨드랑이 아래 손을 넣어 나를 들어 올렸다. 갑작스레 달려드는 입술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휘감기는 혀는 주일마다 다녀간 성당에서 상상했던 악마 발치에 있는 뱀과 다르지 않았다. 얼떨결에 당한 첫 키스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여자친구에게 퍼부을 키스를 만만한 꼬맹이에게 연습이라도 할라 친건지, 어린 아이에게 어떤 욕구를 느꼈으리라고 단정지으면 헛구역질이 돈다.
남성에 대해 분별할 기준조차 없던 9살의 나는 그 길에 얼어붙었다. 다행스럽게도 키스로 끝이 나긴 했지만 그때 느낀 감정을 무어라고 설명할까. 두려움과 함께 퍼뜩거리는 심장소리가 얼굴까지 울렸고 입 안에 독이 퍼지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달려들어 입술을 내밀었다. 따스한 엄마의 볼에 뽀뽀를 하며 더러운 입이 씻기길 바랐다. 그 일은 왠지 모르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되었다. 당연히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이를 꺼내선 안되었다. 지금에 생각해 보면 이후 원치 않는 스킨십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9살의 그 소녀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16살, 성에 눈뜨기 시작할 즈음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에 대해 말하자면 뭐랄까. 남자 중의 남자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에 봐도 그럴 테지만 일단 키가 크고 제법 단단한 이목구비를 가진 친구였다. 몸짓에 어울리게도 목소리 역시 가라앉아 있어 여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나 그 친구나 처음 이성친구를 경험했고 이후 그는, 내 친구를 포함해 끊임없이 많은 여자친구들을 사귀었다. 어쨌든 우리는 어른 비슷한 흉내를 내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그가 나와 성관계를 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분명 그 친구는 원했던 것 같은데, 둘 다 순진했던 덕에 그저 안고 뽀뽀하는 정도로 그쳤다. 여느 연인 못지않게 자주 만나고, 오래간 붙어 있기도 했지만 내 친구와 이상 기류가 있다는 걸 알고부터 삐걱거리다 헤어지게 됐다. 이후 몇 년 동안 불쑥불쑥 사과를 하거나 재차 만나자고 연락이 왔지만 별 아프지 않았고 미련도 없어 거절했다.
여중을 졸업하고 남녀가 함께 다니는 고등학교를 올라갔을 땐 무난한 성격 때문일까 정말이지 많은 고백을 받았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사귀지 못했다. 18살, 나는 이과를 선택했는데, 우리 반에 학교의 예쁜 애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았고, 심지어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때에 남자친구 하나를 사귀게 되었다. 그는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남자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사회성이 좋고, 축구를 잘하고 공부도 나름 잘했던 친구이다. 물론 놀기가 먼저였던 아이였지만 무엇 하나 뒤지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함께 학원을 다녔고 금세 학교에 소문이 번졌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그 친구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으레 어린 친구들이 그렇듯, 그건 굉장한 이슈처럼 느껴졌는데 그 사람이 나의 첫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늘 함께였는데 대놓고 사람을 좋아했던 그와 달리 나는 혼자이거나 둘이 있는 쪽을 선호했다. 어쩌면 그 간극은 영원히 메워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서로 놓아주고 인정해 주면 될 터인데 그때엔 어린 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20대까지 이어진 연애동안 우리는 참 많이 다퉜고, 헤어졌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더는 써 내려갈 수가 없다. 아니 에르노의 영향일까. 있는 그대로 내가 겪은 남자 경험에 대해 써 내려가려니 목덜미가 답답하고 숨이 막혀 샛길로 빠져버린다. 두려움일지, 수치심일지 아마 둘 다 인 것 같다. 그녀는 책을 다 쓰고 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타인에겐 별수롭지 않은 이야기일텐데, 여기까지 쓰는 데에도 머뭇거리다 결국 멈춰버렸다. 계속 써 내려가고 싶다. 스스로 더럽다 여기는 그 순간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