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두려움

by 하민혜

아프리카 사파리 사냥, 바다낚시, 네 번의 결혼과 이혼, 두 번의 비행기 사고, 제1차, 2차 세계대전, 그리스-터키 전쟁, 스페인 내전, 중일 전쟁에 참전기록. 그가 즐겼던 투우와 권투를 따라 여행하듯 20여 개의 나라를 엿보며 헤밍웨이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매일 일 리터 이상 양주를 마셔 대고, 음식에 대한 집착 또한 유명한 것으로 알려진 그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탐욕과 고통을 본다. 한 사람의 생애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폭풍 같은 절망과 영광을 거머쥔 그는 노벨 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관찰할 요지가 있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끝내 엽총을 입에 물고 자살에 이른 대작가 헤밍웨이. 수많은 예술가들이 관자놀이나 입에 스스로 총을 겨눴다. 기필코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되새김에도 끔뻑 않던 젊은 육신을 지나 스러지고 늙어 병들 때의 두려움은 필히 모든 삶의 의욕을 마비시킬 만큼 어마무시할 것을 알 수 있다. 불현듯 죽음이 엄습하리라는 공포감을 도저히 이기지 못한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살'이 아닐까. 헤밍웨이처럼 진실, 정직을 강조하고 '남성성'을 과시했던 나의 외할아버지 역시 온몸에 암이 퍼졌다는 의사의 판결문을 듣고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여느 날처럼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에 포마드를 발라 번들거리게 만들고 어디 좋은 곳엘 가시기라도 할 것처럼 옷을 차려입고서는.




생의 끝으로 한 사람을 평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자살을 해야만 했을 누군가들에게서 나는 못내 씁쓰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게 그 선택은 제아무리 노벨상이든, 수많은 여성 편력이든, 그가 누린 모든 것들이 모래성 무너지듯 내려앉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어떻게 죽고와 관계없이 그와 나의 육신이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두려움에 이내 지고 마는 그들의 모습은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의 어린 시절과 평생에 걸친 어머니와의 증오 섞인 관계에서 그는 삶을 '사랑'했기보다 처절하게 전투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를 용서하거나 받아들일 틈이 없던 것처럼 끝내 지고야 말 죽음을 수용할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끝없이 음식을 탐닉하고, 술을 마셔댔던 것처럼. 계속된 재혼과 이혼을 겪었던 것처럼. 생에 그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 내치고 도망가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남성성을 그토록 강조한 것도 어쩌면 그의 두려움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마주 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뒤흔들고,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끝내 엽총을 입에 물 줄 알면서도 그토록 고뇌하며 살아갈 것인가.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힘은 두려움에 대한 크기만큼으로 결정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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