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묵을 곳은 강남 00 은행 지점 앞 화단이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집을 나왔다. 일찍 엄마를 여의고, 지독한 술꾼인 아빠와 함께 사는 친구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날라리가 아니라, 오히려 모범생에 가까웠다.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여느 소녀와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친구와 가출을 했던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집을 나왔을 뿐이다.
우리 가족은 10살쯤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온 뒤, 능력 좋으신 아버지 덕에 늘 풍족했다. 사업 수완이 탁월하신 아버지는 손대는 사업들에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셨다. 평생을 집 안에서 책을 읽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어머니는 언제나 자기만의 방에 틀어 박혀 있기를 좋아하셨다.
그렇다고 밥을 안 차리시거나, 엄마로서 해야 할 의무를 안 하셨거나, 폭력이 있었거나, 따뜻함이 없으셨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아버지는 너무나 바쁘셔서 늘 집에 있지 않았고, 엄마는 엄마 나름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으셨던 것 같다. 고작 이런 이유로 나의 가출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집을 나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것을 실행했던 것뿐이다. 이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놀란 토끼 눈을 뜨는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납득하도록 설명해야 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이 세상이 이유 없는 일들 투성이라서 일까? 없는 이유도 만들어내어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말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진실일 수도 있다.
창가 곁에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고 거실 가득 햇빛이 들어찼다. 어떤 일인지 엄마는 외출하셨고, 나는 귀신에 홀린 듯 늘 잠겨 있는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 거짓말처럼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럴 리 없지만 엄마가 깜빡하신 모양이다. 언뜻언뜻 보았던, 엄마의 노트가 궁금했다. 늘 무언가 골똘히 적고 그것을 감추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잔뜩 쌓인 책들, 햇살에 비친 먼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엄마의 노트들 중 하나를 집어 올렸다. 중간 즈음 펼쳐 휘갈긴 글씨들을 읽어 내려가는데 파앗, 낚아채는 손. 엄마였다. 어느새 들어오셨던 것이다. 방문을 닫지 않으신 걸 아시고 돌아오신지도 모른다. 매서운 눈빛. 나는 도둑질을 하다 들킨 마냥 소스라쳤고, 비난의 눈빛에 뱃속 깊숙이 아픔을 느꼈다.
엄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다. 외할머니가 임신하셨을 때 임신중독증을 앓으셨다. 그 시절엔 산모와 태아가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다행히 어렵게 두 분 모두 살아 냈지만 아기는 소리를 잃었다. 장애 판정을 받을 만큼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받지 않으신 건지 모르겠다. 둘 다 그럴싸한 이유는 엄마의 드높은 자존심 때문이다. 닫힌 방문처럼 엄마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엄마는 이 세계와는 담을 쌓고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쌓아가셨다. 병원도 가지 않으시고, 화장품이나 옷은 거의 사지 않으신다. 검소하신 점을 비하면, 그 누구를 데려와도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엄마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을 다 큰 후에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에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숨기는 엄마를 알고 있었기에 모른척하고 묻지 못했다. 왜 그런 건지, 얼마나 안 들리는 것인지는 한참 후 성인이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늘 곧으시고 품위가 있으셨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이 매서운 것은 그들의 가치관과 신념이 강해서이다. 엄마에게는 늘 어떤 강한 관념이 느껴지곤 했다. 일편 자아가 커갈수록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엄마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들면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마냥 속으로 눌렀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나 역시 나름 착한 딸이어야 했고, 엄마는 신성 같은 존재여야 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수성가를 한 아버지는 어느 날 미용실 여자와 눈이 맞았다. 화려하고 활달한 여성이었는데 우습게도 엄마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엄마는 청순가련하고 집에 있는 여성이라면, 그에 반기라도 들 듯 강하게 외향적인 여성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고 반항하는 심정으로 그 사실을 꼭 꼭 숨기고 있었다. 그 반항이 아빠를 향한 것이었는지, 엄마를 향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엄마의 무능력함을 미워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빠를 빼앗긴 것이 엄마 때문이라는 원망이 있었던 걸까? 자식을 버리고 간 아빠 역시 미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학생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미웠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원망은 언제나 머리를 흔들어 곧 떨쳐버렸던 것 같다.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를 안아 드려야 했기에 나의 이런 마음을 들킬 수 없었다.
역시나 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출은 그즈음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의 딸, 00 학교 중학생과 같은 껍질을 스스로 벗고자 시도했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살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어떤 이유도 없었다.
우연히 시작한 가출에서 인신매매가 있다던지, 어떤 무서운 일을 겪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아빠와 엄마가 합심해서 나를 찾기까지 열흘 남짓이 걸렸다. 아빠는 그때 나에게 왜 집을 나간 건지 물으셨다. 학교 안 다니고 일하려고 나갔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아빠는 달에 백만 원을 줄 테니 사업장에서 일을 하라고 하셨다.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느낌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가 날 찾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두 분이 함께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나에겐 완벽했던 이 독립 투쟁은 스스로의 존재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카뮈는 산다는 것이 곧 부조리를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부조리를 살핀다는 것은 무엇보다 부조리를 직시하는 것이다. 나의 열여섯 가출은 이 세상의 비합리적인 침묵에 대한 반항이었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가장 역할을 하는 곱고 예쁜 친구, 부잣집 아가씨로 태어나 일평생 귀가 어두운 것을 감추는 엄마, 살다가 진짜 사랑을 만났다며 호소하는 아빠, 미쳐버리든가 아니면 모든 부조리를 받아들이던가. 지금도 가끔 그때의 어지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주로, 착실한 나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때 만끽했던 오롯한 홀로서기를 은밀히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