휩싸이는 때

감정이란 무엇일까

by 하민혜

아이가 말대꾸를 할 때, 상사가 나무랄 때, 누군가 나를 못마땅해할 때. 불의를 마주쳤을 때. 언짢거나 불편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가만히 감정을 느끼고 머물면서 나는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책으로 읽고 머리로만 이해했던 내용이 부지불식간에 촤라락 연결되고 이음새가 맞아떨어졌다. 기민한 알아차림속에서 느낌 안에 관념(생각 덩어리)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례로 아이가 말대꾸를 할 때 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언짢은 느낌이 든다. 일차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인지했다. 다음 그 느낌들을 버리려 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느껴주고 머물렀는데, 이 부분을 언어로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것은 마치 기분 좋은 느낌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기분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그 느낌이 놓아지려 하거나 나도 모르게 넘기려 할 때 얼른 붙잡아서 느끼려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공감을 하듯 '그래. 언짢은 게 당연하지. 화가 나는 게 당연해.' 되뇌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느낌 속으로 들어가 마주 보면, 첫번째로 화가 난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름이 어떤 모양을 내고 있건 하늘은 하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구름(감정)은 계속 변하고 지나가지만, 하늘(본성)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이다. 변하는 것에서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느낌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화가 난 줄 몰랐을 때 도리어 화를 더 많이 내게 된 적이 있을 것이다. 언짢고 불편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 감정과 나를 분리하지 못했을 때 상황을 어지럽게 만들곤 한다.

두 번째로 감정이 올라온다는 것은, 지금 내가 보고 겪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함이다. 감정은 지금에 있지 않고 언제나 과거(경험)와 미래(예측)에 의해 일어난다. 내 느낌을 알아차리고 따라가 보면 감정은 생각(관념,무의식)때문에 올라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로 가면 감정이 올라온다는 뜻이다. 편견, 아집, 교만, 고집, 오만. 감정이 이들을 대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 있게 되면 휩싸이지 않고 눈이 밝아진다. 상황에 끌려가거나 그렇다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언행이 비로소 힘이 있는 말과 행동이 된다. 절명의 순간에도 소리를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허우적대거나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현명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느낌에 머물고 관념을 비워낼수록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힘이 강해지고 평안(행복감)을 수시로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관념을 비우고 현재에 머물면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 것일까? 관념을 모두 비워내는 것은 완전히 깨달은 지점, 신성에 가까운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천년 동안 어두운 동굴도 불을 밝히면 일순간에 밝아질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신성이 아닌 본래 나를 만나고 찾아가는 여정에 '감정'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어떤 느낌이든 그저 느낌일 뿐이다. 감정에 휩싸여 수시로 나를 잃거나 감정 너머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신을 보지 못하는 일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 중에도 잔잔하게 혹은 눈에 띄게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알아차린다. 인정하고 공감하며 느낌을 밀어내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내게 올라오는 느낌, 감정은 모두 소중하게 다루고 인지한다.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돼.' '이건 화가 날 일이 아닌데.' 하면서 스스로를 타이르지 않는다. 그저 느끼고, 머무른다. 일을 하고 있건 대화를 하고 있건 언제나 느낌을 알아차린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감시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설득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느낌을, 감정을 그저 '그렇구나. 그런 느낌이구나.'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요가 자세를 취하다 보면, 고통스러운 지점이 있다. 그때에 그 고통이 싫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다른 부위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엉뚱한 곳에 힘이 들어가면 운동이 되기는커녕 심한 근육통이 오기 쉽다. 경락 마사지를 받을 때에도 그렇다. 숨을 크게 쉬면서 그곳에 머물라고 하는데 고통이 싫어 힘이 들어가면 마사지받기 전보다 몸이 아파지는 이치다. 감정이란, 관념을 마주 보게 하는 엷은 통로이다. 관념은 아픈 기억이나 괴로운 경험에서 쌓이기 때문에 느낌 속에 머무르기 어려운 거였다. 습관처럼 외면하고 다른 부위에 힘을 주는 법이 바로 남 탓이고 세상 탓이다. 감정이 올라오는 때에는 반드시 나(마음, 나의 관념)를 마주 보아야 한다. 언제나처럼 외부로 시선이 향하면 본질을 놓치거나, 더 괴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수용하고 머물러야 한다. 나를 화나게 하는 상대나 사건에 집중하기보단 내게 집중한다. 느낌을 알아차린다. 그것만으로도 엉뚱하게 벌어지는 고통과 괴로움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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