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불현듯 생각나는 일이 있다. 20대 어느 즘, 좋아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해 귤을 까먹으며 함께 영화를 보았다. 책상에 너저분하게 올려져 있던 노트에 별 마음을 두지 않았다. 요리를 한다고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에 그가 노트 하나를 들어 올렸다. 심지어 뒤집어 펼쳐져 있던 노트였다. 그곳엔 전에 사귄 남자친구와의 별별 사건들을 끄적인 일종의 상황글이 적혀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 남자의 몸을 구석구석 적어놓기까지 했다. 나는 접시를 들고 다가갔다가 그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홱하고 낚아채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누구에게도 보일 마음이 없었고 심지어 그가 보았다는 게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때는 10살이다. 넉넉한 시골 학교엔 우리들 머리만 보일 정도로 반이 적었다. 교장 선생님과 가족처럼 지내던 학교를 벗어나, 우리 가족은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된다. 교육을 위해 나가기로 결정하셨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머리에 화려한 꽃핀을 꽂은 아이부터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멘 아이들까지 시골 학교와 다른 풍경에 나는 넋을 놓고 기뻐했다. 예쁜 아이들 틈에 나도 그들과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랐다. 도심 아이들에게 전학 온 시골 아이 하나는, 재미있는 실험 대상이었다. 이리저리 나를 굴려대던 아이들은 이내 곧 흥미를 잃고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반에 우두머리 즘 되는 예쁜 아이들 중 하나와 내가 둘도 없이 친해진 일이 불씨가 되었다. 내가 그 친구를 꾀어내 단짝을 갈라놓았다는 게 주요 논지였다. 어느 날엔 실내화가 찢어져 있고, 책상 위엔 낙서가 가득했다. 아이들이 몰려있는 곳에 끼려고 하면 슬며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시골에서 세상만큼 밝았던 나는 교실에 들어서기가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만큼이나 어둡고 두려웠다. 나를 따돌리자고 두둔했던 아이는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부잣집 딸이었다. 늘 머리를 땋고 예쁜 옷을 입었던 그 아이에게서 나는 무언가를 뺏긴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애초에 내 것이랄 게 없는대도.
하루는 엄마 몰래 지갑에서 천 원을 뺐다. 처음은 얼굴까지도 심장이 뛰는 듯했지만 이내 별 대수롭지 않게도 만 원씩 꺼내기까지 했다. 그 돈으로 나는 지옥처럼 검었던 교실에 조금씩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아이들을 매점이나 문방구로 데리고 가 마음껏 고르게 했고, 그렇게 나는 호구를 자처했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샌가 반 아이들은 모세가 바다를 가른 것처럼 그 친구 편과 나의 편, 두 쪽으로 나뉘었다. 일방적인 괴롭힘과 고립에서 벗어났지만 이제 집에 가는 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발에 족쇄를 찬 마냥 죄수처럼 걸음이 무거웠고 엄마 얼굴을 보면 숨을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때에 나는 뜬금없이 아무 종이에다가 이를 풀어놓곤 했는데 얼마나 성의 없는지 책상에 그대로 두고 학교엘 갔다. 그러니 엄마가 이를 알기까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여느 날처럼 집에 들어와 방으로 들어서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민혜야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꾸나. 할 말 있니?"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들통이 난 것이다. 엄마가 오기 전 수분동안, 심장소리가 귀에 내리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삐그덕 방문이 열리고, 나는 태연한 얼굴을 상기하며 침을 삼켰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 바지 걷어올리거라" 묻지도,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으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바지를 걷어 올렸다. 아팠다던지, 서러웠다던지 하는 것들은 기억에서 지워졌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내 안도했다는 것이다. 암흑 속에 있는 나를 드디어 엄마가 건져 올린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방바닥에 앉아 노트 한 장을 찢었다. 일기를 써 내려가듯 내가 얼마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픈지를 적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빼곡히 채워 몰래 엄마 방에 가져다 두었다. 그 이후, 나는 다시는 10원 하나 다른 사람의 돈을 만진 적이 없다.
한 번은 이혼을 하고 싶은 이유를 아무 데다 토해냈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남편을 험담했고,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는 이기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얼굴을 보고는 할 수 없는 마음들을 적어냈으리라. 그를 또 보란 듯이 벌려놓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우습게도, 단단한 돌처럼 굳어진 남편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앞에 놓인 노트북에 내가 쓰다만 글의 커서가 위기 상황을 알리며 깜빡이고 있었다. 이미 쏟아져버린 속내로 우리는 묵은 마음들을 꺼내 나눌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감추고 싶은 것이 드러난 덕에 나는 매번 귀한 앎을 얻곤 했다. 칠칠맞게 흔적을 남기고 흘리고 다니는 게 문제라 생각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신체 기관으로 작용해 낱낱이 나를 표현하게끔 했다. 말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의도에 대하여 하나하나 헤치는 작업은 언제나 꽉 막힌 구멍을 뚫어 통쾌하게 한다. 말과 말의 공백에서, 알 수 없게도 맴도는 입술보다야 나긋하게 내리 앉은 글로서 어지럽게 꼬인 매듭의 끝에 다를 수 있었다. 글은 적나라한 수단이었고 나는 도저히 무엇도 감출 수가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