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계

부부의 흔한 풍경

빨간 날

by 하민혜


주말이면 가방을 싸고 싶었다. 침대에 늘어진 남편이 미웠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시작한 후로도 한동안은 못볼꼴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곤 했다. 평일에는 그의 늦은 퇴근 시간에 어물쩍 아가들을 챙기며 상세하게 바라볼 새가 없지만, 주말이면 아침부터 꼭 밤까지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여간 곤욕스럽던 시절이다. 그래 그렇게나 성실하게도 주말 계획을 세우던 나였다. 주변 이웃들은 어쩜 그리도 부지런하게 '아이를 위해' 다니느냐며 나를 추켜세웠다. 실상은 엄마 자신을 위한 외출이었다.


밖으로 나간다 해서 꼭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아기들은 어렸고 그저 공원이나 숲, 박물관 같은 곳에 가서 코 앞에 떨어진 돌멩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했다. 남편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제법 있었다. 더러는 같이 다닐 때에 세트처럼 보이는 4인 가족에 자부심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었다. 집에 내내 있어선 새삼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이었다. 착한 남편은 되도록 같이 가달라면 함께했고, 본인을 놓고 갈 적에도 군말하지 않았다. 나도 그럴 것이, 아이 둘을 혼자 챙기며 갈 적에는 그저 옆에 있어주었던 남편 자리를 아쉬워하며 그의 존재 자체를 감사할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주말이나 연휴에는 집에 있기를 거부했다. 글은 적지 않지만 말수가 부족한 나는 부부사이에 구멍 난 애정에 대하여 무심하게 굴었고, 그에 맞수라도 놓듯 남편 역시 매한가지였다. 이따금 나의 결혼 생활이 전시장에 걸린 그림처럼 느껴진 적도 많았다. 겉으로 보아선 별 문제가 없는 데다 그를 닮은 딸 하나, 나를 닮은 아들 하나 놓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으니까. 달력에 박혀있는 빨간 날이 마치 부부 사이를 경고하듯 걸려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부모 역할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선 많은 부부가 그들 사이의 애정이나 관심에 공백을 만드는 일이 많다고 한다. 모든 시선이 아이를 향해 있고, 보통의 경우 일을 하는 각자의 영역까지 더해지면 둘의 관계를 챙기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부 관계는 언제나 가장 뒷전에, 아이들 먼저 그다음이 일이나 부모님, 친구들, 개인의 취미 등에 한없이 밀리고 만다. 해서 우리 역시 별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으레 다들 그러고 사는 거니까. 우리 부모님도 그랬으니까.


나는 문제를 모른 체할 줄 모른다. 아기에게 한 눈을 판 것도 잠시였지 아이들이 점차 자라나고 손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남편과의 문제가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모름지기 부부라면 애틋한 사이여야만 한다는 관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데면 데면한 사이에 심하게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숨을 쉴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의 빚은 보기 좋은 핑계가 되었고 나만큼 말수가 적은 남편과 나의 사이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아마 사랑이 무언지 몰랐고 한시도 떨어지기 싫은 애틋함으로 함께한 게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짧은 연애 중에 덜컥 들어선 아기를 핑계로 현실에서 도망치듯 결혼을 택했다. 그 적의 나에게 그랬듯 그 역시도 남녀 간의 연애사나 결혼, 그리고 사랑은 왠지 모르게 뒷전에 둔 일이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적절한 시기에 시작한 연애의 타이밍과 현실적인 문제 뭐 그런 거였던 듯 싶다.


대강 아이에게 정신이 팔린 어느 즘을 지나고 나면 부부 사이의 문제가 크게 다가오는 시기가 온다. 왜 결혼했는지를 돌아보게 하고 결혼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따져 묻게 된다. 그의 가치 그리고 나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각자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도리어 세게 맞부딪히는 시기이다. 결혼 전에는 이런 것들을 대개 놓치고야 만다. 나는 결혼 11년 차다. 한 남자와 11년을 얽혀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결혼 생활들이 우당탕 거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는 일자무식 상태로 식을 올리면 난생처음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이 어마무시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나간다니.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니, 결혼은 결코 사랑의 결말일 수 없다. 사랑의 종말도 아닌 것이, 사랑의 과정이라고는 참으로 혹독하고 사랑의 시작 즘으로 두면 어떨까. 열린 결말로 두는 것이야말로 결혼을 정의 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그와 사랑을 시작한 지 11년이다. 그 간에 보통의 연애만큼이나 지루한 권태기도 맛보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낀 일도 있었다. 법적으론 내내 함께였지만 별거 기간을 포함해 우리에겐 대략 두어 번의 이별도 있었다. 덜거덕 거리는 기차를 타고 오늘도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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