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도 안 되는 뱃속에 전쟁이라도 일어난 걸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허리는 끊어질 듯 휘둘리고 윗가슴은 부풀어올라 쓰려 앓는다. 진격의 거인이 닥치듯 매 달 여지없이 고통은 찾아온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싸해지는 아랫도리에 재차 미간이 찌푸려진다. 월경통에 시달릴 때면 잊어버린 출산의 고통이 슬몃 고개를 든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고통의 결이 다르지 않다. 어째서 여성의 몸은 이토록 많은 일들을 해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오래간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리라 떠들고 다녔다. 월경과 출산 때문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튀었다간 손가락질을 받는 여성이 가여웠거나, 악녀는 있어도 악남은 없는 것이 억울했거나.
젠더 갈등은 내게 코밖의 일로, 일절 관심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여성의 적이 여성이란 아픈 말이 실감 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수치를 당한 여성에게 꽃뱀이라고 돌을 던지는 이들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수가 훨씬 많다고 한다. 그런 때면 똘똘 뭉친 여성들이 얼마나 큰 허위허식으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게 된다. 고부갈등은 단순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다툼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 간의 질투인지라. 타고나길 복잡한 구조를 가진 여성을 나는 혐오하고, 목이 꺾이도록 존경했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불어닥치면 어느샌가 아름다운 창조를 내던지고 다만 남성으로 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여성이 여성을 할퀴는 이유는 자신의 여성성을 혐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아들을 바랐던 가족의 역사 속에 엄마 뱃속을 요란스레 휘젓고 다니던 나는 다만 여성이었다. 나때만 해도 대를 이어갈 아들이 절실한 시골집들이 당당하게 넘실댔다. 자라는 내내 언니와 나는 쉴 새 없이 부엌을 드나들었지만, 남동생은 감히 발꿈치 하나 넣질 못했다. 아들은 그저 상에 앉아 점잖이 받아먹는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어른들 몰래 동생을 불러다 부엌일을 시켰다. 억울함을 참지 못할 때면 등짝을 한 대 후려치고 온갖 꾸중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여성인 것이 그 자체로 죄가 되는 세상에 속해 있었다. 지난한 역사 속에서도 고난 통에 사그라드는 수많은 여성들에 울먹임도 잠시, 나는 나의 여성성을 밀고 거부하는 일이 허다하다. 같은 결에 버림을 받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이다. 잠잠한 혐오감이 나설 때면 깊숙한 데 꺼내지 못한 아픔도 반드시 떠오르고야 만다.
딸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잘 해내야만 했고, 언제나 아름다워야 했다. 무슨 일에든 노력해야만 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어선 안되었다. 모나지 않게 열심하기가 내 삶을 점 칠했다. 피해의식을 도모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나를 풀어헤쳐 논리적이지 않은 수치심과 절망감에 대해 바로 보려 하는 것이다. 띄엄띄엄 찾아오는 월경처럼 부지불식간에 다가오는 혐오감을 자기기인하지 않으려 한다. 태권도를 다니면 안 되고 대학을 들어가길 허락받지 못했던 엄마에게서, 그리고 문득 세상에게서 내게로 달려드는 수치심을 더는 모른 체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 나는 딸의 엄마로서 또 다른 여성의 아름다움을 깊이 바라보고 있다. 작은 그 몸으로 한 세상을 품어야 하는 어머니, 그 무한한 사랑을 지닌 딸을 마주 본다. 기필코 넘어서야 할 수치심과 혐오감의 그 턱을 강인하게 넘어서기를. 나는 딸에게 여성의 존재, 그 가치를 나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