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계

소외

바람 부는 날

by 하민혜

아무 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가도, 그래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하다가도.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무얼 줄 수 있는가와 관계없이는 안 되는 걸까 생각에 잠긴다. 저절로 차고 흘러넘쳐 그렇게야 인연 하게 되리라 믿고 있는지도.


방정맞게 멈추질 못한다. 이리 저리 박혀있다가 우습게도 이내 곧 시끄러운 틈에 들어가 소외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스스로 벗어나고자 했음을 기억해낸들 그것만으로 도무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세상으로부터 날세게 떨어져 나간 느낌, 물에 기름이 분리되듯 나는 그렇게 섞이질 못하는 존재가 된 것만 같다. 그렇다고 부러 녹여내는 내가 싫고. 겉도는 느낌을 가여워하는 나도 싫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는 마흔을 맞이하고 있다. 어느 곳에든 가없이 녹아들지 않고, 종교에도 몸담지 않으니 도대체 어디에 나를 묶어야 하나 안절부절이다. 묶이면 또 벗어나려고 애쓸 테면서. 나는 부지런히 떠도는 나를 가만스레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다.




용기를 내야 한다 해서 용기를 내 본 것이다. 용기를 낸다는 건 그로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만히 있으면 다칠 일이 없으니까. 다만 멈춰 있음이 생명의 본질이 아님을 잊지 말기로 한다. 고여있는 물에 파도가 일지 않고 이내 곧 썩은 내가 진동하리라는 것은 예고된 일이다. 술렁이는 파도 그 자체가 생명의 파동임을. 끝없이 진동하는 에너지 자체로 이미 정신사나우리만치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체 두질 못하는 나의 정체가 탄로나는 순간이다. 어디든 던지고야 말 정신이라면 기어코 썩고 말 육신을 향할 것이 아니라 파도가 치는 곳으로 흘러야 한다.


철썩이는 파도에 뺨을 맞을지라도 물먹은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더라도 그것이 삶이므로. 생명은 육신을 빌어 멸하기에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지금까지처럼 오로지 막아서고 피하는 일에 사활을 걸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통을 감수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을 피할 길은 없으나 어떤 수고를 감내할 것인지 선택할 용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쥐고 나아갈 힘 말이다. 북에서 불어올 줄 알고 맞이하는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줄 모르고 맞는 바람과는 다를 터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오늘따라 바람이 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