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계

된장찌개-우선순위

지적에 대하여

by 하민혜

나는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한다. 아니 정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신발은 철에 맞는 걸로 하나, 가방은 아무 곳이든 무난하게 메고 다닐만한 것으로 하나를 닳도록 쓰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정리를 못한다는 것은 물건에 애착이 없다는 뜻이다. 해서 애초에 소유한 물건 자체가 많지 않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다른 면이라설지 의외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집은 항상 문이 열려있다. 동네 아이들, 이웃들 할 것 없이 언제고 자유로이 드나든다. 정돈되지 않은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대문 열기를 그치지 않았다. 꾸밈없는 나처럼 때로는 게어야 할 옷들이 널려있고,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거실 한복판에 정리하려 널어 두거나 아이들 장난감이 전시라도 여는 양 늘어져 있기 마련이다. 나는 느릿하여 부산스럽지 않고 거슬리지 않을 적이 많지만 누구나 그렇진 않다는 것 즘은 알고 있다.


하루는 입이 걸기로 소문난 동네 할머니가 번쩍 집에 들르셨다. 거실 한 켠에 앉자마자 "이게 쓰레기통이야 집이야? 니는 구역질도 안 나니?" 하고 무섭게 욕을 뱉으시고는 고개를 사방팔방 돌리며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업어 재우고 있었고, 뱃속엔 둘째 아기가 있었다.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얼굴이 벌게지고 숨이 닳았지만 애써 가다듬었다. "에이~할머니, 그런 말 할 거믄 우리 집 오지 말아요."


오늘은 아이 친구들이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쳤다. 놀랄 일이 아니지만 어제오늘은 바깥으로 돌아다니느라 더 어수선했다. 이런 솜씨로 바깥일까지 하고 있으면서 집에 들어서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단연코 요리이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 아닌가. 정성껏 요리를 하고 식사 시간을 지나면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치든, 그 또한 내겐 우선해야 할 일이다. 정리는 내게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이 됐다. 나와 함께 들어온 아이들 옆에 머리가 둘이 더 있었고, 한 아이는 그 적에 할머니만큼 입이 걸었다. "아 왜 이렇게 더러워"라며 집에 들어섰다. 나를 따라 방에 들어서서는 "이 방에서 자는 거야? 더러운 데서 자네"라고 말했다. 그 옆에 멀뚱히 서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참 기분 나쁘게 하는구나"라고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다행인지 8살 꼬마는 이모가 뭐라든 자기들 결에 돌아가 낄낄대며 놀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에 가서 설거지를 하며 가만 나를 살폈다. 애초에 정리하지 않은 집에 대해 예의를 갖추며 "집이 정리가 안되어있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인가? 아이는 보이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머리를 감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 내게 누군가 "머리를 안 감았네"라고 말한다 해서 기분 상하는 것은 어쩐지 이상할 일이다. 그 말이 듣기 싫으면 머리를 감으면 그만이고, 정리를 하면 되는 거니까. 우선순위가 어떻니, 일을 하니 하면서 핑계를 둘러대도 정말은 부지런하게 치우고 정리하면 될 일이다. 평가 자체를 듣기가 싫다면 수시로 대문을 열지를 말던가 말이다.


나는 그릇을 서너 개 즘 닦아가며 이내 곧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마터면 괜스레 비뚤어진 마음으로 애꿎은 당근을 힘껏 내리칠 뻔했다. 손가락이라도 베면 그 길에 욕에 욕을 속으로 삼킬지도 모른다. 진미채를 볶아 반찬통에 담고 된장찌개를 끓이다 말고 글을 적는다. 지적을 당하면 나를 보면 될 일이다. 무례하니 어쩌니 해도 그 말이 아픈 이유는 내가 정리하지 못한 공간에 대해 갖고 있는 죄책감 때문이다. 문득 지금 이 순간 집안 가득 향긋한 된장찌개 냄새가 참으로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제 닭을 볶아야겠다. 여러 아이들을 먹일 생각에 더욱이 식탁은 풍요로워진다. 오늘도 쪼잔하지 않고 문을 열 수 있어서 요리를 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한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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