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때엔 어느 학교에나 '미친개'라 불림 직한 선생이 꼭 하나즘은 있었다. 서늘한 가을빛이 돌았던 그날, 어떤 이유엔지 나는 운동화를 신고 급히 학교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교내에선 실내화를 신는 규정이 있었다. 2층에서 내려가 1층 현관을 앞에 두고 '미친개'와 마주쳤다. 선생은 언제나 학생 눈을 바로 보지 않았다.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이죽거렸다. 까딱까딱, 지나가는 개를 부르듯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신을 벗어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선생은 내 손에 들린 신발을 가로채 사정없이 머리를 내리쳤다.
턱이 울리는 얼얼함에 열일곱 사춘기의 반항과 수치스러움이 한껏 타올랐다. 한편 늘 그래왔듯 나약한 학생의 신분을 인정할 수밖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쩐지 그가 기대하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뿐이었다. 허옇게 머리가 샌 미친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에 맺힐 눈물을 예상하는 듯 했다. 으레 그에게 걸린 여학생은 울기 마련이었으니까. 기어코 흐르는 눈물에 어떤 희열이라도 느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가득 물이 차오르는 눈을 부여잡고, 떨리는 입술을 있는 힘껏 다물었다. 그게 그를 자극한 건지 씩씩대며 알 수 없는 궤변을 쏟아붓고는 다시 한번 머리를 내리쳤다. 퍽퍽퍽. 그는 범행 도구를 처리하듯 구석 어디에다 신발을 내던지곤 갑자기 겸연쩍어하며 돌아섰다.
열 걸음 정도 멀어졌을까. 와라락 친구들이 다가와 괜찮은지를 물었고 나는 눈이며 어디며 할 것 없이 하도 세게 다물었던지라 도통 입이 열리질 않았다. 표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나는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처벌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통에다 잘근거린 입술이 마음 같지 않았으리라. 도망치듯 화장실 맨 안쪽 칸에 들어가 머리를 매만졌다. 손끝에 끈적함이 느껴졌다. 그대로 내려보니 콧물처럼 피가 묻어났다.
다음 날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주변 엄마들이 치맛바람을 휘날려도 꿈쩍 않는 사람이었다. 학교에 늦지 않도록 나를 깨우거나 숙제를 챙겨준 적도 없었다.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나를 내버려 두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머리의 핏덩이를 그냥 넘기지 못해 학교에까지 온 거였다.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글쎄, 나로서는 엄마가 학교에 온 것이 이례적인 일이다. 엄마는 선생이나 어른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가르치던 분이셨다. 더군다나 당시엔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선생은 징계를 먹거나 어떤 불이익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말뿐이었을지 모르지만 성난 엄마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엄마는 다시는 딸의 머리든 몸 어디에든 손을 대지 말 것을, 그랬다간 엄마가 어떻게 할지를 말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눈을 맞추지 않는 선생은, 그 이후 한동안 나를 더욱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밖에 나오면 늘 조용하고 가느다랗던 엄마가 만면에 힘을 주고 세게 나서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따금 나를 위해 나서는 용감한 모습을 본 일이 있는데, 유독 그날 교정에 들어서던 엄마의 비장한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한테는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치맛바람은커녕 콧바람 하나 불어넣질 않지만, 당시 엄마의 마음을 절절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어렸을 때의 나로서는 엄마가 불현듯 울고 웃거나 화내는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적이 많았다. 그건 감히 자식을 향한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서라는 걸 안다.
혼자만의 새벽 시간을 가진 지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오늘 아침엔 아이들이 부스럭대며 잠을 깨는 소리에 침대로 달려들었다. 사랑한다 말하며 나를 꼭 껴안는 아이들. 언제 이렇게 컸느냐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치다가 뜬금없이 가슴이 차올라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엥? 엄마 지금 우는 거야?" 그때의 내가 그랬듯 딸은 엄마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함께 할 시간이 자꾸 줄어들어서, 너희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고. 서연이가 고양이 선물을 받고 눈물을 흘렸을 때처럼 엄마에겐 너희가 큰 선물이라고. 아이들은 말없이 나를 껴안고 이해가지 않는 어미의 등을 토닥였다. 나의 마음을 가늠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이들에게 무엇도 바라는 것이 없다. 모든 인연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이별을 끌어와 미리 아프려는 건 아니지만 벌써부터 그 순간이 이렇게나 아쉬운 오늘이다. 나는 그저 한껏 사랑을 내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