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스코필드는 사방이 꽉 막힌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는 배급 시간에 급식소의 숟가락을 감춘다. 변기 뒤에 구멍을 파서 탈옥하기 위해서이다. 10년 전 즘 흥행에 성공했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는 정말 집요하게 구멍을 파서 탈옥에 성공한다. 이젠 정말 포기할 만 한데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알고 싶었다.
나는 수년간 옷가게를 하고 음식점, 바(bar) 등을 운영했다. 오래간 보험회사 소장직을 맡아 사람들과 얽히는 일을 계속해왔다. 그로 사람의 열정이 치솟는 때와 바닥을 기는 모습을 유난히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어떻게든 사람들과 함께해야 했기에 그들의 열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처음은 희망을 건네는 방법을 택했다. 돈이나 휴가, 승진 따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다만 이런 류의 외적 동기부여는 얼마 못 가 그 힘을 잃었다. 그래 나는 장기적인 삶의 희망을 주리라고 마음을 고쳤다. 이는 당장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좀체 나누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나마 나로서 찾아낸 방법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리더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매사 긍정적으로 임하는 거였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죽어라 일하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태도를 갖추려 노력했다. 나는 그들에게 보이는 미래의 그림이 되고자 했다. 분명 나 자신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다지 잘한 방법은 아니었다. 결국 이 역시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일을 하게 만드는 외적 동기부여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상황판단은 대체로 일 번을 하면 나쁜 것을 받고 다른 선택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 식의 대가성을 띤다. 단순하게도 아이가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받을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또 어린 시절 형제에게 양보를 하는 것은 그렇게 행동함으로 누군가(주로 양육자)에게 인정(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라나며 많은 경험을 통해 가치관이 생기고 지성과 감정의 폭이 깊어져야만 대가 없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철저히 어떤 결과를 바라는 어린아이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수순이 정상이라고 본다. 대체로 어른의 겉모습을 한 어린아이라면 습관처럼 행동에 앞서 거래하는 법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일을 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다.' '종교를 믿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함이다.' '자기 계발을 하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명제는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행위를 하는 그 자체로서가 아닌, 무엇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도구로서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사랑의 대가로 섹스를 바란다면 어떨까? 사랑은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는 걸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터다. 섹스를 얻기 위해 사랑을 한다면 사랑이라는 절대 가치는 본질을 잃고 만다. 본래 가치란 흥정이 아니며 그 자체로 목적일 때만이 본연의 가치로서 빛을 발한다. 우정의 대가로 관심을 바라는 것은 어떤가? 무엇을 얻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면 그 또한 진정한 우정이라 볼 수 없는 일이다. 가치를 세우는 일에조차 목적을 담는 일이 당연해지면 이 지점에서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돈과 명예를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 사랑의 대가로 충성과 존중 혹은 복종을 바라는 부모라면 새삼 어지러울 일이다.
거래와 같은 삶이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쉽게 내버리고 좌절하는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바랬던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금세 낙담하기 때문이다. 대가를 바랐던 어린아이에서 성장하지 못한 어른은 인간관계이든 일에서든 성급하게 실패라 결론짓는다. 무엇보다 과정의 노곤함과 고됨을 버틸 힘이 부족해서다. 애초에 수단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싫은 것을 '참아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섹스를 얻든 얻지 못하든 사랑에 금세 지치는 일이 벌어지고, 돈이나 명성을 구했든 얻지 못했든 내가 하는 일은 참아내야만 하는 일로 전락한다. 그러다 불쑥 어린아이처럼 원하는 게 주어지지 않으면 울거나 성을 내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나마 어른인 척 애쓰는 가면 덕에 징징대지는 않더라도 쉽게 내팽개치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동생은 곧잘 연애를 한다. 누구와 만나든 지난한 사랑싸움을 가져오는데 대게 어린아이들을 보는 느낌이다.(물론 본인은 머리가 아플 때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00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원망은 연인간에 흔한 투정이다. 우리가 함께 있는 이유는 사랑일 것임이 틀림없다. 사랑이라는 가치에 조건을 붙여 흥정하는 일이 당연한 걸까?사랑하는 사람이라 00해야 한다면, 그만으로 이미 00하기 위해 사랑하는 게 된다.
요구할 것은 정당하게 요구하되 그에 조건을 붙일 필요는 없다. 거래가 붙는 단서조항에 가치를 추구했던 관계는 그 본질이 왜곡되어 괴로운 법이다. 그들에게 있을 사랑이라는 가치의 본색이 거래로 인해 퇴색하기 때문이다.
코 앞에 주어지는 무엇이건 장기적인 희망이든 조건을 걸고 일을 수단으로 삼은 결과는 참담했다. 구덩이라도 빠질 참이면 쉽게 낙담하고 주저앉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수단으로 전락한 일은 무엇을 얻기 위한 하기 싫은 업무가 되어 있었다. 일은 일로서의 가치를, 사랑은 사랑 그 자체를, 본질을 목적으로 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토록 바라는 진정한 기쁨은 물론 관계에든 일에서든 성취는 덤으로 주어진다. 우린 매 순간 행동하고, 그 행동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을 수단으로 삼지 않기 위해 늘 나의 태도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