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계

스탠바이

하얗게 지새운 날들

by 하민혜

짝 짝, 캄캄한 새벽 오늘도 나는 내 뺨을 내려쳤다. 어쩐지 아기는 그런 엄마를 보면 더 세게 울어댔다. 나는 아기를 낳고 "네가 이럴 줄 몰랐다." 는 이야길 들을만큼 헌신적으로 나를 내다 바쳤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는 아기인 것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남편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옆에 있지 않았다. 모든 낮, 모든 밤 아기들은 어린 엄마의 몫이었다. 흔히 말하는 독박육아를 한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 힘듦을 느끼거나 토로할 새 없이 행복하다고 혼잣말했고, 당연하지만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첫째 아기가 고작 10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를 가졌다. 배가 불러서도 오직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돌보았지만, 둘째를 낳고부턴 아슬아슬했던 균형 잡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지중지 대했던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은 물론이고 둘째에 대한 물리적인 애씀이 더해지니 점차 감당하기가 벅찼을 터다. 그럼에도 혼자만의 육아는 계속되었고 어쩌면 공감이 가능했을 남편에게조차 무엇 하나 쉽게 털어놓거나 기대질 못했다. 처음은 예민한 첫째와 함께 자고, 신생아는 거실이나 다른 방에 재웠다. 갓난아기는 수시로 젖 달라 울기 마련이라 덩달아 새벽에 깨는 일은 당연했다.


첫째를 재우다 말고 둘째에게 달려가 젖을 물렸고, 아기 기저귀를 갈다가 첫째가 울면 다시 그 방으로 달려갔다. 매일 밤을 좀비처럼 이 방 저 방을 쏘다니며 아무 데나 쓰러져 쪽잠을 잤다. 그렇게 여러 달 두 아이의 젖을 물리니 피로가 쌓이다 못해 좀체 해소될 길이 없었다. 낮잠 한 번 자본 적이 없어선지 처음은 몸이 먼저 무너져 내렸다. 여느 날처럼 늦은 새벽 아기 옆에 비스듬히 누워 쪽잠을 자는데 별안간 다른 방에 있는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몸속 어디에 커다란 닻이라도 달린 양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였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빙글빙글 도는 느낌, 방 전체가 나를 흔들었다.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주춤하는 새 아기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다가 그만, 나는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 날 하나를 등에 업고 하나는 앞으로 끌어 안은채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이석증'이라는 병이 내 증상과 일치했다. 피로가 쌓이고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어지럼증이 생긴 것이다. 병원에 가야 했지만 아시다시피 그럴 새는 없었다.


실은 마음이 무너진 것이었고 그를 눈치채지 못해 몸으로 병이 나투었다. 그렇게 또 수일이 지난 어느 밤 아기는 울고 있었고, 나는 내 안에 누르고 눌렀던 무엇인가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폭발은 소리 소문 없이 고요히 찾아왔지만 어찌나 강렬했는지 모든 의식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자, 아니 어떤 이유엔지 모르게 그 순간 나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도대체 나 자신을 왜 때리는 건지, 무엇이 분한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실은 이런 행위 자체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는 데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의식하지 못했다. 이제와 돌아보니 어떤 순간에나 별수롭지 않은 척했던 새하얗게 무지하고 어린 엄마가 거기에 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 한몫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자신을 언제나 뒷목에 가져다 놓고 부지불식간에 그런 내가 미워 어쩔 줄 몰라했다.




첫째를 가지면서 난소에 물혹이 생긴 것을 알았다. 크기는 6~7cm 정도였고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혹시나 아기에게 해가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모유수유하는 내내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금세 둘째가 생기면서 그를 방치했다. 둘째는 또다시 1년 반을 모유수유했다. 종양이 점점 커져가는 걸 알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아기들이 젖을 떼면 수술해야지' '엄마라면 무엇보다 아기가 먼저야.' 사실 겁이 나면서도, 무거운 아랫배가 불편했음에도 나는 내 몸이며 마음,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살피질 않았다. 관심이라도 달라는 양 혹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와 아기들은 단 하룻밤도, 아니 한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4살이 된 첫째 딸이 처음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을 때 둘째를 안고 병원엘 갔다. 물혹을 살피는 의사의 낯빛이 어둡다. "물혹이 머리크기보다 커졌어요. 큰 병원으로 가야겠습니다." 무심하게, 야속하게도 나를 살피지 않았기에 당연한 벌이었을까. 하늘이 도운 것은 이런 모자란 나에게도 멀쩡히 살아갈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나는 금세 강남 차병원에 입원했고 수술을 했다. 한쪽 난소를 잃었지만 그를 버텨준 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병원에선 한 달여간 회복하길 권했지만 퇴원하자마자 나는 제 발로 보험 회사에 들어갔다. 남편이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매 순간 어쩌면 최선을 다했으나,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짓밟기를 일삼았다. 지금에 돌아보면 하찮다 여기는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은 그 누구가 아니라 나 스스로부터 나를 몰라줬으니 그런 나에게 원망감이 들었을 것이다. 살며 때로는 스스로 무력감, 죄책감 또다시 원망을 되풀이했다. 삶은 늘 지금 이 순간뿐이라 칠흑처럼 길이 어두운 때엔 모든 것이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란 가당치 않음이 당연하다.




나를 몰라주는 누군가가 미운 줄로 착각했으나 정작 나를 몰라주는 스스로가 미웠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아무도 희생을 강요한 일이 없고 모든 일이 나의 선택이었다. 감당하지 못해도 실은 감당 못한 채로 그만이었다. 그 누구도 내게 달려든 적이 없고 오직 내가 잔뜩 나를 몰아세웠을 뿐이다. 아기들에게 지독히 매달린 것처럼 언제나 스스로에게 지독하게 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기를 낳는 순간 갑작스레 '엄마'가 되었다. 난생처음 어떤 존재를 나 자신보다 사랑하면서 그제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랑은 억지로 나를 누르고 참아야만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도리어 죄책감과 불안감을 서로 건넬수도 있었다. 내가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 때, 희생이나 억지가 아닌 진실한 사랑을 내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그를 통해 캄캄한 동굴을 밝히는 따스한 빛이 여민다. 나는 이제야 내 안의 사랑으로부터 원하는 모양대로 삶을 빚어갈 용기가 샘솟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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