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친 분의 피드에서 '반려책'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책을 구입한 지 1년이 넘도록 여러 가지 이유로 손이 닿질 않고, 어물쩍 평생을 함께 할 것만 같은 관계. 그는 그런 상황에 놓인 책을 '반려책'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보다가 문득, 삶의 모든 인간관계에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특히나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 하는 반려자로서, 어쩌면 어느 날에 어떤 이유로 그리 하겠다고 겁 없이 선포하는 일이다.
책 한 권을 구해 책장의 자리를 허용하는 것과, 배우자를 얻는 일을 비교하는 게 언짢을지 모르겠다. 다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책을 소유하는 것과 배우자를 구한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소름이 돋는다. 우리의 판단은 대체로 오래간 맞아떨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구입한 책이 영 별로라 생각하고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몇 년이 지나 불현듯 펼쳤을 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 처음엔 좋았던 책이 몇 년 후엔 그만한 감동이 일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건 필시, 나란 주체가 가만있질 못하고 변하기 때문이리라. 물성이 변치 않는 책도 그런데, 인간관계는 더욱이 곤란하다. 이번은 나만 변하는 게 아니라 상대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만은 변치 않는다는건 편견일 뿐, 자연히 세월 따라 늙어가듯 한 사람의 생각도 낡거나, 진화하기 마련이다.
책은 많고 세상은 넓다. 그럼에도 시간을 들이고 돈을 지불해 책을 구입할 때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표지가 예뻐서도 그랬고, 제목이 끌렸거나 목차가 당기기도 했다. 그저 작가를 좋아해서도 그랬지만 대체로 무언갈 얻을 심산으로 책을 골랐다. 평대에 올린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를 선택한 거다. 그럼에도 내리 열두 달을, 어쩌면 그 이상을 펼치지 못하다니. 막상 들여다놓고 구미가 당기질 않는다니. 자꾸만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기도 하고, 다른 책들에 밀리기도 한다. 우연히 그 책이 눈에 들어오는 날엔 어지간히 찝찝하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끝을 내지 못한 관계처럼. 책임지지 못하면서 소유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 관계라고 다를까? 언젠가 여지없이 끌렸던 사람이 있다. 생각해 보면 왜였는지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 사람 역시 내게 호감이 있었다. 어느 날엔가 뜬금없는 키스 세례를 받았다. 앞뒤 고백 없는 키스였고 정말은 그걸로 끝이었다. 진도를 나가지 못해 서운하단 게 아니라, 그 키스 이후 아무 일 없었던 듯 하루하루가 흘러갔다는 말이다. 알고 보니 그에겐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여자 친구와 끝낼 의도가 없었고 나에게 이 상황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글쎄, 이 무슨 무책임한 일인지. 책을 펼쳤으면 끝을 보고 나서야 도움이 되든 말든, 시원하게 내치든 할 것인데. 어정쩡하게 끝을 보지 못한 관계는 지지부진하며 오래간 죄책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어느 날부턴가 곁을 지나는 그 사람은 똥을 싸다 만 사람처럼 걸음걸이마저 불편해 보였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때 나는 철부지 어린애였고, 좀 지나고는 보란 듯이 나 좋다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 우연히 만나는 것도 싫을 만큼 어느 날부터 그에 대한 호감은 돌릴 수 없는 미움으로 변해 있었다. 그야말로 끝을 맺지 못한 관계로 인한 죄책감 때문이다.
굳이 미워할 필요까진 없었다. 끌린 건 사실이고,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별 수 없는 일이니까. 어디까지나 '키스'로만 끝이 난 것은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으니 여자친구 입장에선 책임감 있는 일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일이나 인간관계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미적댄다면, 피곤한 '죄책감'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얼마 살진 않았대도 몸이나 정신을 망가트리는 가장 큰 원인이 죄책감임을 안다. 끝까지 가보지 못한 미련, 후회, 죄책감 같은 건 영혼에 좋지 않다. 이 모두가 자기 마음을 책임지는 자세,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모자란 탓이다.
부디, 책이든 인간관계든 선택했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나가시길. 그를 미련 없이 내다 파는 일이 있더라도, 결과로 그게 다른 손에 넘어가더라도 그것이야말로 홀가분한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