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by 하민혜


전범선의 산문집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전범선은 MZ세대의 대표이면서 그만의 독특한 생활 방식으로 주목받는 듯하다. 나는 책을 꿰뚫는 '자유'라는 키워드에 꽂히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글을 끄적이는 지금 순간 역시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닌 셈이다. 오늘 새벽 책모임 토론에서도 가슴 언저리에 뭉텅 져 버린 '자유' 그 의미에 대한 물음은 해소될 수 없었다.


나의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유별난 특징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이혼, 해외 살이, 수능 포기, 유흥 사업, 이른 독립. 가족의 역사를 죄다 끌고와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자유'이다. 기본적으로 '~로부터의 자유'는 물론, '~할 자유'도 당연했다. 대표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을 자유, 해외를 갈 자유, 이혼을 할 자유 등을 들 수 있겠다. 자유는 방임과 다르게 책임이 따른다. 해외에 가고 싶다면 A부터 Z까지 모든 준비를 스스로 할 탓이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일절 개입은 없다. 실은 설사 도움을 요청해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지만 서로 미안하거나 무안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아도 공기 속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무슨 선택이건 스스로 책임지고 준비해야 했다. 구성원 누구에게 묻거나 따질 필요 없이 너무도 당연하고 태연한 일이었다.


유년 시절(아마 그 시기즘)은 '자유'보다 '강압'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엄한 편이셨다. 어른들보다 수저를 먼저 들어선 안된다거나, 문안 인사를 해야 한다던지 제법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았다. 자유와는 다른 분위기였지만 실제로 강압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아가 성립된 후 학원을 다니건, 대학을 가지 않건, 유학을 가건, 장사를 하건, 결혼을 하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유년기와는 상대적으로)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다른 가정환경에 있는 이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부모님이 관여하고 일부를 또는 전부를 책임져 주는 것이 부러운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다만 20대 초부터 사업 전선에 뛰어든 나로서는 사람들의 무책임함(?)과 의지박약을 보며 놀라곤 했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 타인(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불평하면서도) 어쩐지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잘되든 않든 결과의 책임을 타인 또는 사회에게 미루려 하는 것 등이 특히 이해가지 않았다.


우선 엄마부터 독립적이어야 했다. 엄마 스스로가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남편 때문에', 하면서 자신의 삶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 때로 무슨 일이 벌어지건 책임 전가를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누군가 '때문'으로 넘기지 않아야 한다. 자유와 책임은 관련이 깊다. 결국 책임지지 않기 위해, (또는 실패할 미래가 두려워서) 자유를 포기하는 일들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가족의 풍이 자유라고 해서 형제들이 삐뚤어졌거나, 외길만을 가지 않았다. 오히려 삼 남매는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대한민국 상위 5% 안에 훌쩍 드는 수입을 벌고 있다. 삐뚤어진 적이 없냐 하면 솔직히 말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삐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 마음부터가 문제 아닐까. 아이가 꽃길만을 (안전하게) 걷길 바란다는 부모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진흙길이나 돌길을 모르는 아이가 꽃길만 걸으면, 그 길이 꽃길인 줄은 알 성싶으냐는 게 팩트이다. 굳이 힘들고 고된 길을 걷게 할 필요도 없지만 만일 그렇게 되었다 해도 훗날 꽃길을 걸을 때에 행복감과 성취감을 더 크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방법이 바로, 자유 없는(책임 없는) 안전한 길만을 걷는 것이다. 과연 누가 보기에 만족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상태라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걸까?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이 마음 자체가 벌써 구속이고 결박이 아닐까.




'눈치란 결국 남을 신경 쓰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이 원하는 것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다. 눈치를 안 보고 살려면 일단 자아를 찾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남이 원하는 것 말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눈치를 많이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경쟁의식과 집단주의. 둘 다 확실한 위계질서를 전제한다. 경쟁이란 위계질서의 상위층으로 올라가려는 발버둥이다.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면서 나와 남의 위치를 비교하는 것이다. 집단주의란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위에 두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집단 우두머리의 이익을 뜻한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전범선) 중에서-


스스로 자유를 추구한다면,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건 세상으로부터 편견 섞인 이야기를 듣건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분이 언짢거나 화가 나는 마음 역시 자유이지만, 세상이 그 모양이고 사람들이 문제라 여기는 마음은 편견이고 구속이라는 생각이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의 사람이나 상황 역시 내쳐 배우는 중이건 잠시 돌았건 그 상황(상대방)에 대한 나의 감정, 마음을 돌아볼 일이다. 이것이 그간 살아오며 내가 추구한 소극적 자유이다.

자유를 추켜세우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리주의, 동물해방 등을 모두 주문했다. 중고책이지만 (아이들 책까지 포함해서) 138,900원 결제를 했다. 내가 인지하는 자유와 타인의 관점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사실 누군가에 대해 편견을 갖는 건 엄청나게 눈치를 보는 일이다. 한국인은 일본, 중국, 미국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반감이 크기 때문에 편견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본다. 여성 혐오자만큼 여성이 뭘 입고 다니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눈여겨보는 이도 없고, 동성애 혐오자만큼 남이 누구와 어떤 체위로 사랑을 나누는지 따지는 이도 없다. 편협한 집단주의의 울타리에 갇혀서 타자에 대한 편견을 양산할수록 눈치를 많이 보고,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전범선) 중에서-


채식주의에 대해서도 책을 몇 권 읽어보려고 한다. 불편하면서도 언짢은 것은 뭐랄까. 모든 관점이 너무나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 자체로 이미 인간의 편견이고 오만에 들어간다. 본인이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동물들도 (인간이 원하는)자유를 원할 거라는 말에서도 걸쩍지근함을 느꼈다. 가족들이 대학살에 참여하고 있다는 글귀에서도 역시나 언짢음이 느껴졌다. 생명 존중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동물의 행복이나 자유, 사고를 인간 중심적으로 판단하는 점이 걸린다. 생명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식물 역시 학살(?)하지 않아야 한다. 식물 역시 생명을 가지고 있잖은가.

사람을 죽여선 안되니까 (사람과 닮은)동물을 죽여선 안된다면 식물은 눈, 코, 입이 없기 때문에 마구 먹어도 되는 것일까? 애초에 왜 사람과 닮았기에 같은 편으로 묶는 것 부터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다. 지구 입장에서 아니, 우주 입장에서 보면 동물이나 사람이나 식물이나 매한가지 아닐까. 동물을 무자비하게 사육하고 단일종으로 길러내는 방식을 찬성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실은 우리 집은 엄마가 채식주의자이신 지 오래고, 나 역시 육류 섭취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남들 좋아하는 계란이나 우유도 썩 좋아하지 않고, 전범선님과는 다른 의미로 아이들에게 동물성 식품을 덜 먹이려 노력해 왔다. 혹여나 식품을 구입할 때에도 동물 복지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구입한다. 솔직히 말해 동물 복지를 신경 써서 라기 보단 지극히 나 중심적인 이유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님의 '총, 균, 쇠'에서 농업은 인간 최악의 실수라고까지 표현한 바 있다. 비단 농업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풍부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식량을 위한 농업, 축산업 등을 의미한다. 단일종으로 사육하는 인간 중심의 자행이 유전자의 다양성을 죽이고 사람까지 죽인다. 결국 (인간이 죽거나 괴롭지 않기 위해) 농업과 축산업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 움직임이 있다. 번외로 자연은 단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원한다. 종이 다양하지 않으면 전염병이 확산하고 자연은 그런 종을 가차 없이 말살한다. 획일화된 경쟁으로 모난 돌을 깎아내는 지금까지의 교육은 어떨까? 성적(스펙, 학벌)으로 줄을 세우며 개인의 독특함을 죽이고, 집단주의를 향해 우위에 선 사람만이 이득을 보는 사회 역시 망할 수밖에 없다. 자연은 신성불가침의 가르침을 내어 준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지극히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자유라는 키워드에 사로잡힌 덕에 시간을 내어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나만의 개념 확립이다. 참고로 정답은 없다. 언제나 정답은 없어야 한다. 다만 내가 추구해야 할 자유(가치)가 무엇일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각 개인으로서 누구나 인류를 대표함과 다름이 없으므로 (이기적이지만 인간 말살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주의, 자유 본연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긴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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