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누일 곳

道 길에서..

by 하민혜

얼마 전 왜인지 허탈해하는 인친님의 쪽지를 받았다.

잘은 모르지만 외모와 가진 재력이, 꾸린 가정이 커다란 문제가 없는 분이다.

때로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도리어 허한 가슴을 토로하는 일이 있다.

주변에서 보았을 때 인정할만한 재산과 명성을 가진 경우이다.

"배가 부르네"라고 생각할 것을 알기에 그 입을 열지 못하고 허무한 마음은 가슴에 고인다.


나는 166센티에 49킬로이다. 애를 둘 낳은 후에도 처녀 때 입은 옷들을 입는다. 치마나 바지는 늘 제일 작은 사이즈를 사면 맞는다. 이런 나를 두고 동네 언니들(아이 엄마들)은 "나는 평생 네 다리로 살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라고 까지 했다. 사무실에 출근을 하면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묻는 이들도 있다. 자랑을 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진심으로 그 언니에게 평생에 소원을 빌 것이 없어서 그런 소원을 비냐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온 신경을 쏟는 것은 알고 있다. 오죽하면 망하지 않는 산업 중에 '다이어트' 그리고 '미용'이 손에 꼽힐 지경이니 말이다. 마른 사람은 내 이야기에 무척 공감하겠지만 막상 이런 몸이라는 사실로 인해 내가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물론 20킬로 감량, 10킬로 감량 등 꽤나 눈에 띄게 변화를 겪는 분들은 분명 삶이 달라진 것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갖고 싶은 외제차가 좋은 집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료해지고 무덤덤해지기 마련이다. 날씬한 몸이 축복이 되기 위해선 외제차를 가진 일이 축복이기 위해선 그것을 내가 축복으로 인지할 때에만 가능하다.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는 이유 그리고 외모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이다. 날씬하기만 하면, 돈이 많으면, 예쁘면 나는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언제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잠재의식 속에 깔려 있다. 그 마음을 보지 못하고 외모에, 재력에, 명성에, 권력에 집착하다가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생기곤 한다.

파랑새 동화가 생각이 난다. 주인공은 행복해지기 위해 온 세상 파랑새를 찾아 돌아다닌다.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질병의 방, 전쟁의 방, 신비의 방), 숲, 묘지, 행복의 정원을 차례차례 다니게 된다. 행복의 정원에서 만난 행복은 아이들을 알아보지만, 아이들은 행복을 알아보지 못한다. 마침내 집에 돌아가 원래부터 집에 있었던 하얀 맷 비둘기가 실은 파랑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파랑새를 옆집 소녀에게 선물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자신에게 파랑새가 없어도 행복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마지막엔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파랑새를 놓치고 마는데 이들은 다시 파랑새를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표어를 달고서 말이다.


동화를 읽으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날씬만 하면.." "대학만 잘 나왔어도.." "부모만 잘 만났어도.." "얼굴이 좀 예쁘면.." 행복해지기 위해 내게 부족하거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욕망한다. 그 욕망이 바로 행복을 가리는 줄을 모르고 '언젠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조건을 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모, 돈, 명성, 권력 등을 원하는만큼 이루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가 더 문제다. 성취대로 이룬 사람들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괴로워진다. 분명 가졌으니 행복이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걸 위해 고생했나?' '도대체 뭘 위해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저 정도 사는 사람이 왜 자살을 해??" "정신병이다. 배가 불렀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있다. 원하는 나를 가만 살펴보면 지금의 나를 미워하며 타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함정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것이 날씬한 몸이든, 돈이든, 명성이든 기필코 이루고 마는 사람들이 도리어 괴로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은 행복할까?

오늘 만족하지 않으면 내일은 만족할 수 있을까?




애벌레들은 미친 듯이 산비탈을 올라간다.

모든 애벌레는 태어나면 위로 올라가고 있는 애벌레들을 보게 된다.

"왜 올라가는 거야? 가면 뭐가 있대?"

"몰라. 다들 열심히 하잖아! 올라가야지. 태어났으면 열심히 올라가는 거야!"

다른 애벌레를 밟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목숨줄이 끊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올라간다.

어느 날 꼭대기에 오른 애벌레 턱 밑까지 따라간 2등 애벌레가 꼭대기에 있는 애벌레에게 물었다.

"어때?? 거기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어...."

"뭐라고?? 말도 안 돼 다른 애벌레들에게 이야기해줘야겠어!"

"이야기하지 마.... 그냥 날 부러워하게 놔둬"


내 마음을 반영한 조금은 각색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100억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온 마음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외모이든 돈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을 가져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고서 살아가면 어떨까? 무엇도 욕망하지 않고 무심하게 아무렇게나 살게 될까? 도인이 아닌 나는 그것을 마음으로 온전히 알지 못하나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평온하고 안전하며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삶. 사랑하며 사랑받는 일에 두려움이 없는 삶. 설사 나를 때리는 사람조차 미워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삶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네 삶은 도(道) 즉 '길'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만날 수련한다며 욕망을 누르는 누군가도 모두 '길'을 걷고 있다. 올라오는 마음 중에 누를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정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을 새기며 지금 이 순간, 매 순간 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허상을 좇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눈이 떠지기를 이 또한 욕망임을 인정하고 편히 숨쉬는 지금을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소원을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