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나고 싶다

의무

by 하민혜





수개월 전에 인스타에 올린 글이다.

애정 하는 분의 고민으로 이 글이 떠올라서 올려본다.


나는 늘 집에 오후 3시 정도면 퇴근해서 들어온다.

집에 온 후에 나의 역할은, 잔소리하고 치근덕 거리는 엄마 역할이다.


며칠 전 저녁시간에 30분가량 아이들끼리 두고 상담을 간 적이 있다.

그 회사는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가득한 곳이다.

전무님과 어서 상담을 끝내고 엄마 역할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분들은 맥주를 한 잔 마시러 간다고 했다.

얼마나 부럽고 아쉬웠는지 모른다.

술자리를 좋아한다기 보단, 그분들의 자유가 탐이 났다.

이런 일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둘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그렇다.


마음을 보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피해 의식을 가졌다.

엄마로서 할 도리를 다하겠다는 마음이 순수한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아주 깊숙한 곳에 엄마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마음 덕에 내가 괴롭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는 죄책감과 수치심이 들어 있었다.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주변에서 "대단하다" "아이들을 참 잘 챙긴다"라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또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엄마로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나니 피해 의식은 사라졌다. 오직 자초하고 선택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전무님과 회사 동료분들이 맥주 한 잔을 한다고 했을 때, 아쉬운 느낌을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뱃속 깊은데서부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고, 집에 가면 할 일이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의무가 그리고 책임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막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것을 '의무'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사회에서 규정했든 어쨌든 온통 나의 관념일 뿐이다. 만일 내가 엄마로서 역할을 하지 않았을 때, 누가 보아도 손가락질 할만한 짓을 하고 다닐 때 과연 아이들의 인생에 그것이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맥주 한 잔을 포기하거나, 책을 좀 더 읽지 못하고, 결혼 전처럼 혼자 여행 다니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 나 스스로 책임을 다했을 때 느낄 행복감, 만족감, 사랑받는 느낌, 인정받는 느낌 등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내가 그렇게 해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괴로움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드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회사 업무에서 그리고 집안일 등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어떤 느낌으로 행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좋겠다. 참 아픈 말이지만 인생에서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하는 것은 없다. 의무를 다한다고 해서 나의 인생이, 아이들 인생이 잘되리라는 법은 없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은 없다. 마음이 괴롭도록 나를 몰아붙이거나, 의무감으로 힘이 든다면 차라리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 어떤 결과도 알 수 없기에, 명백하게 잘못될 것만 같은 일들조차 감히 내가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기에, 진실은 오직 현재만이 존재하기에 그렇다. 괴로운 것은 의무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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