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느낌을 따라갈 때

by 하민혜

연년생 남매 둘을 키우고 있다.

정말 많이들 다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째가 딸이라선지 몸으로 과격하게 싸우진 않는 편이다.


둘째가 곧 수술을 앞두고 있다.

가슴 사이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혹이 눈에 보이게 커지고 자라고 있다. '종양'이라는 이름은 무시 무시하지만, 교수님은 그 이름을 붙이셨다.


며칠 전, 남매 둘이 놀다가 딸이 실수로 그 가슴을 세게 걷어차고 말았다. 감염이나 염증이 생기기 전에 수술하려 했는데, 보기 좋게 새빨갛게 부어 올랐다.

딸에게 화낼 일이 아니기에 가슴으로 눌러둔 분노가 오늘 터져 나왔다. 오늘은 내 눈 앞에서 아이 가슴을 발로 찼기 때문이다.


"서연아! 조심해야지 발로 차면 어떡해!"

"아 나도 일부러 그런거 아니야!"


딸은 일찍 동생을 본 아이다. 워낙 아기를 끔찍이 생각하는 나는, 첫째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요란 법석을 떨었다.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던지, 울면 바로 안는다던지 극성맞게 아기를 대한 것이다. 덕분에 예민하게 자란 첫째 아기에게 연년생 동생은 언감 생심이었다. 사랑을 뺏겼다는 마음을 느낄새 없이 딸을 챙긴다고 챙겼지만, 둘째 아기는 정말이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개인적으론 아기가 둘이 되며 물리적인 한계 덕분에 아이들에 대한 집착을 꽤나 내려놓을 수 있었다. 흔히 동생을 보는 아가가 그렇듯, 우리 집 첫째 아이도 둘째에게 사랑을 '뺏겼다'는 에고의 집착이 강하다.


"쟤가 먼저 나 괴롭히고 나 못먹게 했다고!"


딸은 억울한 눈물까지 쏟아가며 내 앞에서 '빼앗긴' 사랑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서연아. 일부러 때리지 않았다면서, 동생 밉다는 이야기는 왜 하는거야?"


나는 아이들을 엄하게 다루지 못했다. 마음 공부를 지속하며, 미움을 다루고 쓰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화를 내지 않으면서 화를 내는 법을 알았다고나 할까. 그 전에는 아이들을 혼내고 나면 그렇게 미안해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때린 것도 아니고, 아주 무섭게 몰아 세우지도 않는데도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린다. 나는 차분하게 아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괴로움은 엄마가 아니라 서연이 자신임에 대하여. 끝내는 토라져서 구석에 간 아이를 가만히 두고 기다려 주었다.


아이를 키우고, 훈육하면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오늘은 잘못했을 때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가라앉은 뒤엔 이것에 대해 아이와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인정하기에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딸에게 어른들도 이것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잘못을 인정하면 정말 잘못한 일이 사실이 될까봐, 그래서 인정받지 못할까봐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실은 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도리어 사랑을 받는다.

사랑을 받겠다는, 빼앗겠다는 그런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보다 타인의 인정을 떠나서도 잘못을 마음 깊이 인정할 때, 서로의 심신이 편안해진다.

머리로 생각하는 에고는 어리석고 힘이 약하다.

느낌으로 살아가려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면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은 에고의 어리석음이고,

편안한 느낌을 따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현명한 영혼이 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서연이는 몸과 마음이 다가 아니라고 했지?"

"응 영혼이 있다고 했잖아"

"엄마에게 난 잘못한 게 없다고 울고 소리낼 때 느낌은 어땠어?"

"..불편했어"


"그래. 불편한 그 느낌이 진실이야.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지?

언제나 그 느낌을 잘 따라가렴.

그게 네가 가진 진정한 힘이고, 수호자이고 안내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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