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 첫사랑이다.
나는 아빠를 참 좋아했다.
우리 집은 삼 남매로 나는 언니 밑에 둘째 딸이었고, 셋째는 귀한 장남이었다.
존재 가치가 크지 않은 둘째 딸이지만 아빠도 나를 예뻐했다.
아빠가 나에게 유독 집안일을 시키거나, 커피를 타 오게 하는 일을 기꺼이 즐거워했다.
그런 심부름을 내게만 시키는 것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살 생리를 시작하고 성에 대한 관념이 생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는 아빠가 룸살롱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룸살롱이 뭐하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아빠 차를 뒤적이다가 어떤 여자와 바닷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본 날을 기억한다. 아빠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새벽 1시가 넘어갈 즈음 자고 있는 언니와 남동생을 뒤로 한채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아빠의 룸살롱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빠와 사진 속 그 여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작은 룸에 들어가 동그란 테이블을 두고 아빠와 그 여자 그리고 나와 엄마가 둘러앉았다. 아빠와 엄마가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데 나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아무 말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침착하기로 소문이 난 지경이지만 사랑하는 아빠와 사랑하는 엄마의 못볼꼴을 두고 볼 자신이 없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은 장면으로 남아 있을 뿐 어떤 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귀를 닫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아래 숨겨놓은 떨리는 내 손을 잡는 손이 있었다. 이성을 잃은 부모님이 아니라 그 여자였다. 눈이 마주쳤다. 속삭이듯 내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이젠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지만 예쁜 여자였다.
나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약간 구역질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룸 밖으로 뛰쳐나와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나가든지 말든지 부모님은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잠시 후 나는 어느새 현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난 후였을까. 어떤 사건이 먼저 일어난 걸까?
기억은 이렇게나 엉망진창 섞여 버렸다.
나는 아빠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민혜야"
"네?"
"아빠가 여자 친구 있는걸 어떻게 생각해?"
아빠는 억지로 유쾌한 목소리를 내며,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뭐랄까. 무언가 대답을 하며 그저 웅얼거리고 있었다.
"아빠가 여자 친구 있는 게 잘못이야?"
아빠는 재차 물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도망치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내 말은 중요하지도 않고 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빠가 이상한 가면을 쓰고 아픈 말을 한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아빠를 욕할 수 없었고, 그러고 싶은 적이 없다. 너무나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아직까지도 그때 상처를 주는 아빠가, 상처를 입은 아빠가 그리고 내가, 그때의 엄마가 너무나 아프다.
아빠와 엄마가 느낀 불안과 수치 그리고 죄책감은 이제 막 성에 눈을 뜬 15살의 나를 에워쌌다. 나는 성에 대한 부적절한 관념은 물론, 이 수치와 죄책감을 다루지 못하고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