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who am I?

by 하민혜

가만히 책을 읽다가 영화 '트루먼 쇼'에 대한 언급에 온갖 상념이 복받쳐 글을 적는다.

주연으로 짐 캐리가 트루먼을 연기했고, 그를 중심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트루먼은 세트장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30여년간을 그 곳에서 살아간다. 그는 진실을 알지 못한채 가족과 친구 등 주변 모든 상황을 실제라 믿고 성장한다. 하다못해 어릴 적 바다 풍랑에서 사고로 잃은 아버지까지도 연극처럼 꾸며진 일이었다.


그의 삶을 바라보는 수많은 애청자(?)들은 그와 함께 울고, 웃는다. 트루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 친구, 그 모든 것이 조작되고 유도되었다. 스스로 선택했던(선택했다고 믿는) 취향과 상황들은 대본에 맞게 꾸려진 일들일 뿐이다. 언뜻 생각했을 땐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모님과 친구들, 혹은 성장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 내 것이라고 믿는 생각과 가치관까지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인연과 상황들이 심어준 것들이다.

"내 것인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다 선물이었다." 고(考)이어령 선생은 말씀하셨다.


저녁으로 무를 가늘게 썰어다 설탕으로 잠시 재워 물기를 짜낸뒤, 고춧가루 곱게 입혀 무채를 만들었다. 금방 무친 무채에 계란 후라이를 넣고 참기름과 함께 밥을 비벼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가끔 내가 먹는 밥이 내 몸에 들어가 나의 일부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방금전의 나와 무채 비빔밥이 들어온 후 내 몸은 그 구성이 달라졌으리라.

우리 몸의 세포는 매일 3,300억 개가 새로이 교체된다고 한다. 사람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니 대략 200일 정도 지나면 기존 세포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이렇게 나고 죽는 세포들따라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거라고 뚜렷하게 외치긴 어렵지만, 분명 이 몸만큼은 내가 먹는 음식들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오늘 먹은 무채 비빔밥이 이 몸의 세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상상해본다. 햇빛과 적당한 물, 수고스럽게 일하시는 농부와 비료, 농약, 닭, 양계장 주인분, 탈곡기, 기름 짜는 방앗간 혹은 공장, 공장 노동자, 운송업자, 주유소, 기름 수입하시는 분, 아 참 비료도 해외에서 온 재료가 있다면 비행기부터, 해외 노동자....; oh my...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 하나 짚어간다면 내 몸 하나가, 즉 나의 세포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이루어진 것은 없다. 오직 먹을뿐이지만 잠시 멈춰 돌이켜보면 이 세상이 내 안에 들어온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관념, 신념 등을 내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될 일이다. 툭 내려놓고 가만 들여다보면 내 안에 무수한 말과 생각들은 인연한 모든 사람들과 책 등을 통해 짬뽕된 것들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은 '연극' 같은 그의 삶에 엑스트라로 등장한 실비아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녀에게 '진실'을 듣고 만다. 그녀는 지금 트루먼이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모두 현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때에만 해도 진실을 슬쩍 엿보기만 했을 뿐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갑자기 모든 것이 허구라니, 콧방귀를 끼고도 남을 일이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쳇바퀴같고 평범한 삶 속에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자각하게 된다. 자각한 후로 그 증거들을 하나씩 모아가며 이 삶이 '가짜'라는 진실에 조금씩 눈을 뜨고 혼란에 빠진다. "who am I?"


워낙 유명한 영화이다. 혹시라도 보지 못했다면 이번 연휴를 빌어 한번즘은 트루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떨까? 물론 삶이 트루먼처럼 어떤 세트장에서 누군가에게 관찰을 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스스로 선택했고, 굳건히 믿고 있는 위협과 신념들을 한번즘은 돌이켜 보는 것이 필요하다. 과연 나의 생각은 조작되지 않았는가를 의심해 볼 일이다. 또 내가 지키고 있는 몸과 마음 역시도 나 스스로 해낸 것만이 아니라는 진실, 수많은 사람들과 햇빛, 바람, 물이 나를 만들고 살아있게 한다는 진실을 돌이켜 보았을 때 하루 하루 눈을 뜨고 숨을 쉬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또 진실에 가까울수록, 트루먼처럼 고개를 도리 도리 돌리는 마음이 내 안 어딘가존재함을 알 수 있다.

트루먼이 'EXIT'으로 나가 '진짜 자신'을 찾는 장면에 마음이 울컥했다. 살아가며 나에겐 수많은 역할들이 주어지지만, 역할에 따른 연극만을 하다가 떠나기 전에 '진짜 나'를 만나려 노력해보려 한다. 어차피 나에겐 죽음이라는 탈출구가 있다. 그게 끝인지 또다른 시작일런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역할 놀이가 언젠가 끝이 난다는 진실이다. 살며 오직 나의 역할만이, 만들어진 어떤 정체성만이 나를 규정짓도록 내버려둔채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두렵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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