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태어난,
어릴 적 내 생일은 겨울방학에 걸쳐 있었다.
학기 중에 학급에서 생일 축하를 받는 친구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결혼하고 나니 생일은 더더욱 조용하기만 하다. 물론 생일 축하를 해주는 회사 동료나 친구들, 가족들의 전화나 메시지를 받는 일을 감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적대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고 축하를 받는 어린 시절 꿈꾸던 생일 파티는 언감생심이라는 말이다. 더욱이 당연했던 엄마의 생일 미역국은 결혼 후 10년 동안 한 번을 받지 못했다.
뚝 떨어진, 연고가 없는 지역에 시집갈 때 눈물짓던 엄마의 슬픈 얼굴이 떠오르는 날이다. 시집오고 나서 이따금씩 엄마집에 갔다가 돌아가는 날에 서로 눈물을 훔치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않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새삼 느껴진다.
나도 우리 딸을 먼 곳에 시집보내면 이런 마음이 들겠지. 어떻든 잘 살기만 바라는데 그렇지 못한 듯하면 가슴이 찢어지겠지. 발이 없는 엄마에게 딸이 있는 이곳은 너무나도 멀다. 이번 생일은 조용히 엄마에게 찾아가려 한다. 북적거리는 생일 파티가 아니라도 따뜻한 미역국이 아니더라도 엄마 손을 꼭 잡아드리러 가야겠다.
엄마가 있어 내가 있다는 것, 나를 낳고 키워주셔서 이만큼 살아 있다는 걸, 그 깊은 사랑을 갚을 길이 없기에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다. 감사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