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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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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May 01. 2024

이팝나무 아래

아침편지

좋은 아침입니다. 5월 시작이고 노동절이지요. 꼬마들 휴교일이기도 해요. 등교한다고 서두를 필요 없으니 여유로와요.


밖에 나서면 길 양 갈래로 이팝나무가 조르륵 놓여 있어요. 이렇게 떨어져 보면 사발에 하얀 쌀밥을 얹은 것만 같아 '이밥 나무'에서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해요. 학명은 '하얀 눈꽃'이고요. 지나다 보셨을 거예요. 할머니 머리 위에도 이팝나무 꽃송이가 내리 앉았습니다.


며칠 뒤면 일곱 번째 절기인 '입하'인데요. 이맘때면 우리 할머니 해주시던 쑥 버무리가 생각나요. 풍경과 닮았어요. 흐드러진 초록 물결에 하얀 설기가 소복하지요. 


가까이 보면 불어오는 바람 그대롭니다. 동그랗게 오므린 모양이 아니라 흩어지듯 피어나요. 찰기 없고 길쭉한 베트남 쌀처럼요.




사춘기 소녀 서연이는 이 집 첫째입니다. 꺅꺅대길 잘해요.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면서도 입을 벌리기 바쁩니다. 집에 키우는 고양이를 살피면서 소리 내고요. 길가에도 마찬가지죠.


지나는 사람에 시선을 빼앗겨요. 모르는 사이라도 귀를 기울여서요. 대화를 엿듣고 알려주기 바빠요. 


"서연이는 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엄마 나는 사람들이 어딜 보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재밌기도 하고."


"그래, 그렇구나. 엄마는 서연이가 자기를 관찰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는 데에~. 그것도 자꾸 하다 보면 남들 구경만큼이나 재밌어.ㅎㅎ"


웅크렸던 꽃망울이 피어나면 보기에만 아름다울까요. 그 자신이 세상을 향할 수밖에요. 누구나 그런 시기를 지나는 것 같아요. 단지 밖을 향해서는 길을 잃기 쉬워요. 문제 안에 정답이 있어서죠. 나에게 길이 있어요. 우리 모두는 결국 남의 삶이 아닌, 자기 삶을 살아야 하고요. 




서연이와 이팝나무 아래를 지나다 7살 즘 된 아이가 혼나는 걸 보았어요. 듣지 않으려도 분내 가득한 아빠 목소리가 귀에 꽂히더라고요. 모르는 아이인데 마음이 아프대요. 만일 아버지가 시트콤을 보듯 자기 삶을 관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가벼울까요. 굳은 얼굴도 어깨도 조금은 펼 수 있을 텐데요. 앞에 가서 자빠지기라도 할 걸 했죠. 몸 개그 말입니다.


5월, 나를 관찰하는 가벼운 시작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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