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있나요?
당연히 내일이 있을거라는 오만
윤우 : 엄마, 어떤 멍청한 사람이 핸드폰을 만들었을까?
나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씻기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툭툭 털어내는 중에
올해 9살이 된 아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윤우 : 핸드폰이 있으니까 애들이 게임에 중독되고, 어른들도 종일 핸드폰만 하잖아
나 : ㅎㅎㅎ 누가 만들었다기보단 사람들의 합작품이라고 봐야지. 사람들이 원했으니까
윤우 : 뭘 원한 거야?
나 : 재밌는 거. 사람들은 재밌는 걸 좋아하거든
오늘 아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습니다. 그 아이는 아들과 몸으로 잘 놀다가, 10살 누나가 핸드폰 게임으로 꼬시자 금세 정신이 팔려버렸죠. 아들은 핸드폰 게임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친구와 누나가 신나게 게임을 하는데 곁을 서성대며 속상해했습니다. 늘 보던 풍경이에요.
"야 너 우리 집에 게임하러 왔냐?"
아이들은 즐겁든, 화가 나든 쉽게 감정의 노예가 되는 모습입니다. 완전히 빙의된 듯, 여지없이 그 감정을 표출하고 감정에 끌려가 행동을 합니다. 그러니 즐겁고 신나는 것을 계속하려는 마음도 당연히 클 수밖에 없지요. 5살 즈음, 딸아이가 방방 뛰는 장난감을 타는데 무한 반복으로 신나게 타다가 지쳐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후로 아이들이 한 뼘은 자라났지만 여전히 감정 에 끌려 다니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게임 중독(?)보다 어른의 게임 중독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꽤나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난 성인이 의식을 꺼버린 채 살아가는 데 습관이 된 것이기 때문이에요.
틈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온종일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정말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저는 늘 반문하고 싶어요. '정말로' 즐겁냐고, 몇 시간을 게임에 빠져 있을 때, 종일 유튜브를 시청했을 때 정말로 삶이 즐겁고 행복한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그렇다고 말하는 0.0001% 사람은 그것을 지속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분명 게임을 계발하는 사람이 되거나, 게이머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혹은 유튜버가 되거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수도 있을 거예요.
제멋대로 0.0001%라고 말한 이유는, 저 역시 게임이건 유튜브건 의식 밑으로 도망가 현실을 잊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처럼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성인이 이렇게 생각을 꺼버리는 일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현재 나의 상황, 나의 위치 그러니까 '나'를 똑바로 마주하기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거, 바로 내가 한심하다는 마음이예요. 우리가 정말로 끔찍해 하는 건 뭐냐면요.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비판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에게 느끼는 한심함입니다. 내가 나의 한계를 보기를 두려워해요.
빠르게 도망치는 방법으로 좋은 선택지가 바로 게임과 유튜브예요. 스마트폰은 우리를 그렇게 도망치게 돕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인류를 통틀어 인간이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어쨌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는 상당히 부유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도 지금까지의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은 진실임이 틀림없습니다. 이전처럼 굶어 죽을 문제가 거의 없다는 말이죠. 통장에 돈이 있든 없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차를 끌고 다닙니다. 대부분 옆집에 구걸할 필요도 없습니다. 근데 우울증, 대인 기피증, 공황장애부터 자살률까지 정신 질환의 비율은 왜 날로 갱신하는 걸까요?
인간은 본래 돈이나 갖고 싶은 물건 등 '소유감'으로는 행복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부분은 성장, 감사 그리고 창조에 있습니다. 만일 나 혹은 나의 주변에 누군가가 자꾸만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져 있고 무기력 증상까지 보인다면, 이는 필히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일까요? 당연히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겁니다.
내가 나를 보기 두렵다는 것은,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에요. 그건 사람이 나쁘거나 이기적이라서가 아닙니다. 다만 그냥 그런 나를 인정하는 게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계속 도망치다가 끝내 죽음 앞에서 혹은 산더미 같은 빚더미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내려놓게 되고 나를 마주 보게 됩니다. 그래요. 우리에게 죽음은 필연적이기에 결국엔 보기 싫은 꼴을 보게 될 겁니다. 운이 좋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때 마주본 자신의 무능함과 무지에 대해 인정할 수 있게 되요. 아니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살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나는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하며, 사랑받을 가치도 없고, 사랑받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찍으면 출발할 수 있을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현재의 위치입니다. 현재 위치를 잡지 못하면 백번 목적지를 찍어도 출발할 수가 없어요.
나의 값을 인정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꾸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요.
자신을 바로 보지 않으려고 하면, 하루를 산대도 하루도 살지 못한 것과 같을지 몰라요. 실제 내가 '오늘을 살았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기 어려울꺼예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수용할 때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고, 정신없는 속도로 콘텐츠가 쏟아지니 한눈팔기 참 좋은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를 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인 게 당연하겠죠. 불행을 느끼고, 삶을 내버리듯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립니다. 코 앞에 죽음을 두고 드디어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요? 물론 아까 이야기했듯 운이 좋다면 기적적으로 살아나 드디어 삶을 제대로 살기 시작할 수 있을꺼예요.
오늘은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했습니다. 요즘 출근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오기까지 소외감을 느낍니다. 더 이상 그곳에 제 자리는 없다는 느낌이예요. 내가 나를 찾지 않을 때도 같습니다. 그간 살며 내가 나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기에 거리가 멀어져 어색하고 불편한 게 당연한 겁니다.
평생 지속되는 관계는 오직 나와의 관계임을 알 때, 나를 이해해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이해할 때, 조금씩 내게 손을 내밀 때 삶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바로 나와의 관계 회복이니까요.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나로서, 스스로를 가두거나 묶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