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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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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n 02. 2024

내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라도

아침편지

좋은 아침이에요. 잘 잤나요? 새벽은 요가하고 명상했어요. 매일의 아침이 같아도 새롭습니다. 날마다 창밖에 풍경이 다른 빛으로 물들어요. 오늘 이곳엔 구름 하나 없으려나 봅니다. 밖엘 나가기 좋을 것 같아요.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충무로에 갔다가 용산에 들렀어요. 집에 오고 보니 새까만 거실에 고양이 눈만 반짝이네요. 


복싱 선수 김황길 님의 원고를 북클럽에서 함께 살피고 있어요. 직접 작가님을 뵙고 대화 나눴습니다. 두 아이 엄마로서, 한 부모님의 자녀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어요. 작가님 어린 시절 이야길 들었거든요. 지금 우리 삶에 부모님 영향이 많다는 게 새삼스러워요. 


지난달 첫 라방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요. 부모님은 나의 첫사랑이자, 생애 처음 인간관계예요. 단순히 유전학을 말하기보단 상호 작용이랄까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세상이니까요. 부모님이 원인이라기보단 벌어진 사건을 원인이라고 할까요. 명확하자면 벌어진 일에 대한 '나의 해석'이 원인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라면 좀 더 권위적이셨어요. 감정 표현에 서툰 분들이 많지요. 사랑의 매를 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어요. 그러지 않은 집도 많지만 대체로 '맞아야 잘 큰다'는 기조가 있더랬지요.


어떤 식으로든 참고 누르기를 잘해야 했던 시대라서요. 우리 마음이 그래요. 억누르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옵니다.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고 자랐더라도 그게 최선이었을지 몰라요. 사랑하는 방법보다는 먹고사는 게 급급했고요.


제 아버지는 오직 '돈'이 삶의 전부인 것 같았어요. 돈 버는 게 딸보다, 사랑보다 더 큰 가치인 것처럼요. 내내 삶이 그랬고 지금에야 감감하십니다만. 딸에게 한 번도 사랑을 말한 적이 없으세요. 아주 큰일이 아니면 먼저 전화를 걸지 않으시고요. 어려서 저는 늘 아빠 심부름을 해야 했어요. 자식이 셋이라도 늘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요. 감사하는 마음에 더한 연민입니다. 제가 아빠를 사랑하기도 맞지만 아빠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아요. 돈을 열심히 버신 것도, 사랑을 말하지 않는 것도, 전화를 걸지 않으시는 버릇도, 어려서 늘 부름을 받았던 일도 저로선 사랑의 증거예요. 해석이 다를지 모르겠어요. 어떻든 제 해석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바꿀 수 없어요. 이미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해석은 내 자유입니다. 억지로 생각을 바꾸자는 게 아니에요. 정말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겁니다. 이 삶의 주인은 '나'니까요. 


오늘은 아이들과 종일 놀려고요. 잠들기 전 셋이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친구 둘을 불러다 다섯이서 놀 거예요. 행복한 일요일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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