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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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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l 10. 2024

작은 아이랑 나랑

아침편지

안녕하세요. 새벽 매트에 앉아 파란 하늘을 보았어요. 그립다 말해 잠깐 얼굴을 보여준 걸까요. 중부 지역 아래로는 한창 비가 내리고 있다네요. 땅이 무른 것이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법이에요. 모쪼록 조심 또 조심입니다. 


어제엔 마음껏 집을 청소하고 정리했어요. 중간중간 업무를 했어도 대체로 입을 꾹 닫고 움직였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생각을 계속 흘려보내면서요. 


금세 아이들이 하교했어요. 그때부턴 가만 옆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엄마, 오늘 수학 시험을 보는데.."


작은 아이가 조잘대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돌려 이야길 듣는데 자꾸만 끌어안고 싶어 져요. 물론 아이가 끝까지 말하도록 기다렸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아이를 껴안는 일이지만, 아이는 자기 말을 들어주길 바랄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41문제를 푼 거야."


아이 말은 그래요. 매번 힘을 줘서 문제를 풀었고 시간에 맞추기 어려웠다고요. 어차피 애써봐야 다 못하겠지, 하면서 했더니 도리어 많은 문제를 풀었다는 이야기였어요.


둘째는 남자 아이라 그런가요. 힘센 능력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얼굴에 힘을 주다 시작조차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어린 나이긴 해도 패배나 실패를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커요. 내 생각대로 주무르는 게 안 되는 걸 배우는구나, 싶어서 이따금 엉엉 울어도 가만 둡니다.


위로하거나 혼내지 않아요. 억울한 마음을 같이 느껴줄 뿐이에요. 울음은 잦아들기 마련이에요. 조금 후에 아이가 이야길 듣고 싶어 할 때면 꼭 말해줍니다. 


"실패나 패배가 아프긴 해도 어떤 가르침을 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윤우가 느끼는 마음이 나쁜 게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 줘."


아이도 저도, 힘 빼고 나아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드러눕자는 말이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되 '기필코', '반드시'가 아닌 겁니다. '그냥' 하는 거예요. 문제가 있다면 그냥, 문제를 푸는 겁니다. 잘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내 힘으로 잘될 거라는 건, 지금까지의 성공이나 성취가 오직 나의 능력이라고 오만하는 셈이에요. 세상 모든 게 운이 8할이라면 믿으실까요? 많고 많은 나라 중에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흙이 아닌 쌀밥을 떠먹는 것도 모두 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투덜대며 학교에 나서는 아이나, 포탄이 터지는 전쟁 한가운데에 시멘트 바닥에서 자는 아이가 무얼 잘했거나 못해서가 아닌 겁니다.


맞아요. 저는 늘 어깨를 내리자고 말해요.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아 섭니다. 미술관에 가고 싶네요. 스토리에 소식 전할게요. 말랑 말랑한 수요일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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