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이 낭자한 강남 한복판에서
칭찬을 조심해야겠습니다
거인이 내려다보는듯한 높다란 빌딩이 앞다투고, 세련되고 화려한 로드샵이 줄을 잇는 강남은 매일 가장 많은 유혈이 낭자한 곳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성형 인구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자살률과 이혼율을 포함해 성형하는 인구비율도 단연코 전 세계 1위라고 알려져 있다.
어제 아이들이 보는 평범한 가족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별 주제 없이 우리네 사는 이야기이고 딸이 최근 애정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영상에 나오는 가족 역시 우리처럼 4인 가족이었다. 딸의 생일날이었는데, 받은 선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불쑥 내가 한마디 했다. "딸이 아빠랑 꼭 닮았네!" 그러자 남편은 "응 코가 못생겼어. 입술도 너무.."
냉정하게 말해 누군가 내 얼굴을 보고 "쟤는 코가 좀 크다" "얼굴이 타조알 같아"(실제 나는 앞뒤로 보나 옆으로 보나 달걀처럼 오목하게 생겼다.)라고 말한대도, 그다지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인의 특징인지 몰라도 우리는 아무 감정 없이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기를 즐긴다.
아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어른들은 "어이구 예쁘네~"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가서 몇 년씩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영상이나 글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은 이 대화를 의아해한다. 우리나라는 왜 꼭 '예쁘다'라고 말하는 걸까?
고등학교 때 기억나지 않는 잘못으로 교무실에 불려 간 적이 있다. 여자 선생님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나를 쳐다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넌 예쁘장하게 생겨가지고 왜 그러니?"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인데도 그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그 말에 기분이 좋은 건지 나빴던 건지는 모르겠다.
한 번은 노처녀 여선생님이 등교하는 나를 세워놓고, 비누로 뻑뻑 세수를 시킨 일이 있다. 나보다 하얗고 뽀얀 언니도 이 일을 몇 차례 겪었다고 들었다. 학생 신분에 곱게 화장을 하면 안 된다는 거긴 했는데, 실은 나는 화장을 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외모를 칭찬하거나 지적하거나, 하여간 수도 없이 외모와 관련된 많은 일을 겪는다. 여자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깨어있으려 한들, 나 역시 한국인이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주의하려 한다. 하다못해 나 역시 아이들에게 예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일이 많다. 모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실제로 예쁜 아이들은, 밖에서나 안에서나 예쁘다는 칭찬을 늘 들음으로써 자신이 늘 예뻐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춘기가 되면 그 마음이 절정으로 치달아서 얼굴에 난 뾰루지 하나를 못 견뎌하거나, 지나치게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여성이 나와서 오은영 박사와 상담을 하는데, 성형을 굉장히 많이 한 분이셨다. 늘 외모에 자신이 없고, 자기 가치를 외모로 평가하고 있는 경우였다. 안타까웠다.
남편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나나 남편은 각자 살아온 가정환경이 다르다. 외모를 얼마나 중시하는 부모 밑에 자랐는가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남편은 그럼 '예쁘다'가 아니라 '잘했네'라고 칭찬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잘했네'보다 '했네'가 더 좋은 칭찬이라고 말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이미 가진 외모보다는 노력하는 일에 칭찬하는 가정이 많아진다면, 강남에서 피 흘리는 사랑하는 딸들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