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걸려온 전화
여보세요 지금 누구는 지금 사경을 헤메는데..
책을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을 때, 나티코의 아버지 임종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번은 미셸 자우너의 엄마가 암진단 이후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다.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있다.>
언젠가 암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일이 있다. 암에 진단된 상황부터 전이되는 모습, 항암치료 부작용을 겪는 모습과 호스피스에서의 임종까지 적나라하게 방영되고 있었다. 도통 티브이에 눈이 가질 않는 내가 그날 무슨 생각으로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모든 여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비쳐줄 거라고 예고했다면 필히 채널을 돌렸으리라. 나는 황겁한 표정으로 그녀들의 죽음을 마주 보았다. (다큐 제목은 '앎, 여자의 일생'이다.)
엄마와 딸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시간을 그리며 티셔츠가 흠뻑 젖을 때까지 부둥켜 울 때에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데 여자 아이들의 Nxde가 들린다.
yes I'm nude nude I don't give a love
baby how do I look, how do I look~
딸아이가 설정해 둔 요란 법석한 전화 벨소리였다.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하소장님"
고객이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콧물을 흘리며 죽음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늦은 시간에 (오후 8시가 넘었다.) 별 일없이 전화하는 고객, 아니 친구든 가족이든 실은 유쾌하지 않다. 알고 보니 나는 성질머리 없이 꽤나 상냥한 얼굴 밑에, 시간을 뺏기는 모든 일에 경계 태세 모드를 갖춘 사람이었다. 늘 그런 마음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적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불쾌한 마음을 마다 않고 여쭤보았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아 하소장님은 사람을 많이 만나시고, 똑똑하시니 제가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 건가요?"
물론 상냥한 말투를 건넸지만 나의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첫째는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건 무례하단 뜻이고, 두번째로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전화를 끊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전에 말씀해 주신 적금을 제가 들었는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술을 한 잔 드셨고, 본래 저축이 많으신 분인데 또 큼직한 적금을 하나 늘리셨단 게 요지였다. 본인 나이에 이 정도면 금융 점수가 어느 정도인지, 자기의 수준은 어떤지를 내게 물어왔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저 정도면 어느 정도 레벨인가요?"
"사장님. 저는 사람에게 레벨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다른 거니까요. 아시다시피 빚잔치하는 분들도 많고 도산 위험에 처해 있는 작은 기업도 많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레벨을 말할 수 있겠어요"
원하는 대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레벨', '수준' '흙수저' 운운하는 그분의 말에 스리슬쩍 짜증이 올라와 뜻에 어긋나는 대답을 했다.
"아니 제가 궁금한 건 경제적인 상황으로만 봤을 때 제가 어느 정도인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잘하고 계세요. 어렵고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우리 직원이 그분의 저축 금액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로 대화는 끝이 나고 있었지만 내게서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자 좀체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잘하고 계세요. 대단하십니다."
끝내 내 입에서 대단하다는 말이 서너 번 즈음 나와야 했다.
"아 그런가요? 허허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흐름이 끊어진 책을 바라보다가 잠시 짜증스런 느낌을 들여다보았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내게도 있다. 뻔한 그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을 마주하면 상당히 언짢아진다. 그건 고객이라서가 아니라, 목숨 바칠 듯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마저 느끼는 마음이다. 연년생으로 아가시절에 동생을 본 딸은 질투의 화신이나 다름없다. 잠들기 전 반드시 자신을 먼저 안아줘야 하고, 혹 가다 한 번이라도 동생을 먼저 안은 날은 잔뜩 성이 나서 등을 돌린 채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라는 걸 아는데, 그 모습에 화가 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아이가 둘이 된다 해서 사랑이 반으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그저 두 배가 될 뿐이었다. 여러 번 이렇게도 설명하고, 저렇게도 설명하지만 질투와 시샘으로 가득 차 있는 딸의 행동에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한다.
딸아이의 질투와 인정 욕구를 볼 때 언짢은 이 마음에 대해 성찰을 많이도 해보았다. 사랑을 받겠다는(뺏겠다는) 그 마음에 오기가 나서 주기 싫어지는 걸까? 딸이 순수하게 사랑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면 온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어지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사랑을 뺏으려는 모습을 마주하면 나 역시 뭔가 뺏기기 싫은 마음을 느꼈다.
늦은 시간 전화를 건 사장님이 받고 싶은 인정은, 딸이 받고 싶은 사랑은 반드시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여지껏 살며 받은 것이 없다는 마음, 스스로 (누군가에게서든)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다. 세상으로부터 무언갈 받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무엇 하나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 이미 받은 줄 아는 마음,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할 때 타인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그놈의 인정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