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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l 26. 2024

고통이 나를 살게 한다

아침편지

안녕하세요. 입에 아몬드를 물고 있어요. 잠은 잘 잤나요?


이제 평일인지, 주말인지 선명하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말이죠. 아마 저는 하던 대로 할 겁니다. 삼시 세끼 밥을 챙겨야 하긴 하지만요.


집에 식물이 여럿이에요. 대략 살펴도 여덟이 넘네요. 노상 집에 식물을 죽인다는 분이 있어요. 우리 엄마가 그래요. 저라도 실은 물을 자주 주거나, 애정을 듬뿍 주지는 못하는데요. 우연히 식물에 관한 산문집을 서점 매대에 서서 읽은 적이 있어요. 


식물은 햇빛과 물이 충분해도 '바람'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고 해요. 바람, 그러니까 통풍을 말해요. 바깥에 자라는 식물을 보면요. 비가 와라락, 계속 쏟아지니 뿌리가 마를 새 없이 썩을 것만 같은데도. 어떤 때엔 햇볕만 내내 내리쬐니 바싹바싹 목이 마를 것만 같은데 생생하잖아요. 매연에 뒤덮인 가로수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달에 두세 번 즘 적당량의 물을 주고 창 곁에 두어 햇볕을 쐬면 영양은 충분할 거예요. 단지 창 안에만 갇혀 있으려니,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는 탄력이 없는 셈입니다. 


시행착오나 우여곡절을 삶의 풍파에 비유해요. 내 삶이 그리고 아이들이 매끄럽게 살아가길 바라는 생각은 '머리'에 있습니다. 가슴에도 우리 정말,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삶을 바라고 있을까요?


어제 독서 모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영화관에 간다고 상상해 볼게요. 영화 속 주인공에게 아무런 역경이 없고 악인도 없습니다. 내내 행복하기만 하다는 내용이면 어떨까요. 아마 지루함을 참지 못할 거예요. 돈 주고 영화를 본다는 게 어이가 없을까요.


내 삶은 어떤가요? 타인의 삶은요? '나'와 '아이들', 또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삶은 탈없이 매끄럽길 바라는데요. 타인의 삶에의 갖은 풍파를 보는 것은 기꺼워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사실은 이미 허물어져 있다면. 그때엔 영화로 보고자 하는 굴곡진 삶을 나는 사실, 내 삶에도 바라고 있는 셈입니다.


왜요. 왜 우리는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넣곤 하는가, 하면요. 야리야리하든 커다란 나무이든 거센 바람이라도 맞이해야만 죽지 않는 것처럼요. 우리가 겪는 풍파 역시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닐까 싶은 겁니다. 일어나선 안 됐을 것 같은 그 일이, 내게 꼭 필요했던 일인 겁니다. 머리는 이해 못 해도 가슴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창밖이 잠잠합니다. 바다에 열과 에너지가 쌓이는 게 태풍이 생겨날 조건이라고 해요. 화산 폭발이랑 비슷한 걸까요. 쌓인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들고일어나는 태풍은 실제 인명 피해는 물론, 자연을 훼손시키기도 하지만요. 시야를 멀리 보면 이점이 많아요. 태풍이 일어나고야 수자원을 적절히 분배합니다. 대기를 돌리면서 말 그대로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이에요. 물도 깨끗해진다고 하죠.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바람이 불어올까요. 지구 스스로 쌓인 에너지를 대방출하는 것처럼, 내 삶의 역경도 나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건 아닐지. 그럼에도 고통에 비껴 보면 갖은 풍파가 나를 살게 하는 건 아닌지요.


아이들이 집에 있지만 아침은 요가원에 다녀오려고요. 오늘 금요 라방이 있네요. 야호! 오후엔 라방 예고 올릴게요. 아침 햇살과 습한 공기가 열린 창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그대가 있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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