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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흘려 보내기

아침편지

by 하민혜

안녕하세요. 그대 안녕을 바라며 인사해요. 새벽은 몸 여기저기가 쿡쿡, 거리대요. 제주에 가고 싶은 생각을 누르고 요가원에 예약한 참이에요. 내일은 기다리던 글로 독서 모임이고, 다음날은 나예 작가님과 약속이에요. 이런 중에 제주라뇨. 뜬금없네요.


날이 흐려요. 실은 제가 그래요. 어제 많이 아팠어요. 몸 말고 마음이요. 엉엉 울고 몸을 씻으며 마음도 씻었어요.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아이들 앞에 눈물 흘리거나 엉엉 우는 일을요.


혼자 아이 둘을 키우려니 오죽할까요. 세상 저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은 줄 알아, 점점더 펑펑 눈물이 났어요. 친구 말대로, 바다 건너 전쟁보다 당장 내 손가락 작은 상처가 더 아픈 법이죠. 이기적이라서가 아니에요. 진짜 손가락이 아파서 그래요.


마음 이야길 건네는 사람이라, 제가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는 사람으로 아는 분이 있어요. 어제 라방 올린대로, 우린 감정을(나를) 이길 수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우리 마음은 꼭 하나라, 그대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나도 느껴요. 살인자의 마음과 성직자의 마음이 다르지 않단 뜻입니다.


사실을 말하면 웬만큼 여여한 것은 맞아요. 그렇다고 아프지 않거나, 울지 않는 건 아니에요. 아니 어쩌면, 더 잘 웁니다. 예전엔 제가 눈물이 없는 줄 알았어요. 참기 달인이라서요. 제 감정이 뭔지 모를 때가 더 많았어요.


엄한 집에 자랐어요. 엄마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기도 해요. 소리 내봐야 소용없는 셈입니다. 곰같이 살아온 세월이 여럿이라, 습관이 몸에 배었어요. 남들 앞에 우는 일도, 화내는 일도 저는 어려웠어요.


도리어 마음을 챙기고 명상을 해 오면서 그간 참은 눈물인지, 줄줄 흘러나옵니다. 그렇게 울고도 수치스럽거나 불쾌하긴커녕, 시원하고 안심이 돼요. 차곡차곡 쌓인 눈물이 가슴에서 얼어버린 느낌이었으니, 녹여야지 말입니다.


울어도 괜찮아요. 화내도 괜찮습니다. 무기력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그대가 느끼는 모든 마음을 나도 느껴요. 할 수 있는 건 아파하는 일뿐이지만, 나는 그대가 옳다는 것을 확신해요. 그 마음은 그런대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전주, 대구, 제주엔 날이 반짝이는 것 같아요. 떠나고 싶은데, 한여름엔 막상 걷기만도 지치죠. 요가원에 다녀오고, 읽고 쓰는 오늘 할게요. 덥습니다. 일도 여행도 쉬엄쉬엄 하시기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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