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네

정신과 몸의 상관관계

by 하민혜
말하자면 내 근육은 시동이 걸릴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종류인 것이다. 제대로 움직이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더디다. 그 대신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꽤 긴 시간 동안 무리 없이 무난한 상태로 계속 움직일 수 있다. 전형적인 '장거리형' 근육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단거리에는 적합지 않다. 단거리 경기라면 내 근육의 엔진이 걸리기 시작할 때쯤에는 레이스는 벌써 끝나버렸을 것이다. 이와 같은 근육의 특성은, 전문적인 것은 잘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근육의 특성은 그대로 내 정신적인 특성과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생각은 말하자면,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특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반대로 정신의 특성이 육체의 형성에도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육체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며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는 천성적으로 '종합적 경향' 같은 것이 있어서, 본인이 그것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정도이다. 경향은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천성이라고 부른다. 130p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딸은 예민한 몸을 가졌다. 아기 때부터 잠들기 전이나 불안할 때, 속상할 때면 슬몃 다가와 살을 비비적대곤 했다. 화가 난 채로 팔을 붙잡으면 아주 조금의 힘이 들어갔다 해도 화들짝 놀라고, 공포에 드리운 얼굴을 볼 수 있다. 위험한 순간 아이를 붙잡는 때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딸은 주변 상황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해도 되는지, 않아야 하는지를 빠르게 눈치채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나는 늘 그런 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곤 한다.


나는 웬만한 고통도 참고 인내할 만큼 둔한 몸을 가졌다. 그렇다고 근육이 뻣뻣하지도 않아서 휘어지고 잘 구부러진다.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도 왠만한 사람보다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쉽다. 이렇게 흐드러지길 잘하니 늘 기지개를 켜거나 몸을 늘리는 요가를 좋아한다. 어지간해서는 화가 나지 않고 상처도 잘 받지 않는다. 둔한 몸만큼 느릿한 나는 가족에게서 감정 없는 로봇이냐는 말을 들은 아픈 기억도 있다. 유연한 몸은 쉽게 열리는 마음을 빗대 보여준다. 용서할 수 있냐,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느냐는 말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너그러워 좋겠는 게 아니라 매달리는 사람을 뿌리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게 없다. 물론 보기 싫으면 보지 않는다. 심지어 별 감정 없이 관계를 정리하거나 거리두는 일이 쉬운 편이다. 그들 또한 나처럼 이해해주리라 믿는 걸까.


나의 피와 살로 이룬 작은 딸이 완벽하게도 나와 다른 여성임을 깨닫는 순간은 너무나도 많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외모가 다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천성은 돋보적인 하나의 존재임을 보여준다. 모녀지간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일치감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로 홀로 된 섬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고 싶은 마음, 그렇게 한없이 일치감을 느끼고 싶다가도 문득 홀로 된 존재로 있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너무나 가까워지고 싶고 또 떨어지고 싶은 것이다.



정신과 몸의 상관관계라, 작년 3월 요가원을 다니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이 묵묵히 10달은 지속되었으니, 이번은 11달은 지속하자 마음먹는다. 정신을 바꾸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으니 몸을 바꾸는 시도가 괜찮은 방법이려니 싶다. 물론 그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나마 눈에 보이기라도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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