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몸이 아픈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제 유아인의 마약 소식을 듣고 마음이 술렁거렸다.
그와 내가 무슨 관계에 있지 않고 심지어 그의 팬도 아닌데, 의아한 일이다.
이전에 그가 자신의 소유를 늘리는 것에서 더는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만 알지 못한다. 원하는 만큼의 부와 명예, 자산을 가진 사람이면 모를까? 어렴풋이 무엇이든 마음껏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뿐이다.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진실을 몸소 체험을 한 그들에게서 이따금 이유 없는 추락이 이어지곤 한다. 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약물에 손을 대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는 소유욕이 강하진 않다. 그럼에도 돈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마음껏 돈을 쓰거나 함부로 대하면서도 늘 그 마음 안에는 돈이 떠날까 하는 불안감이 숨겨져 있었다.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라고 겉으로나 속으로 백 번 이야기를 해도 행동은 그와 달랐다. 중학생 때부터 전단지, 피자집 서빙,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장사를 했고, 서울 한복판에서 4개의 가게를 운영했다. 결혼 이후에도 아이들 핑계를 대며 늘 열심이었다. 사치를 부리지 않았던 이유 역시 어쩌면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안다. 인생에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위해 보내고 있으니까. 시간은 곧 생명이라는 진실이 가슴에 깊이 맺힌 이후 나는 나를 끊임없이 관찰했다. 이따금은 돈을 더 벌기 위해 다른 일을 생각하거나, 또 지금의 일로 돈을 잘 벌기 위해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돈'은 '사랑'으로 각인된 듯하다. 어떻게 하면 사랑(인정)을 더 받고, 사랑(인정)을 줄 수 있을지를 고심한다.
결국 열심히 돈을 버는 사람들은 실은 사랑을 주고, 받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대부분은 밥을 먹지 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존의 이유로 벌어야만 하는 이들까지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누리는 풍요나 안전이 인류 모두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 즈음은 알고 있다. 유아인을 포함해 최소한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은 (세상으로부터 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커다란 사랑만큼 큰 버림이 도사리는 그림이 그려져 조금 섬뜩하다. 사랑을 받음(돈이 끝없이 쌓임)이 결국엔 아무 느낌이 없어지는 지경이 되면, 스스로가 사랑을 버림으로써 받음의 느낌을 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건 머릿속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면의 의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선 이래서 삶이 공평하다고 이야기할는지 모른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건 삶에 있어 공평이 아니라 참으로 허무하다. 애쓰고 거머쥐려는 모든 것들이 허상과 같아, 생명을 한없이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로서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그 모든 사랑(소유)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보다 앞서 성취를 그러내느라 바쁜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갖지 못한 것이 다행일지 모르겠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 짓는다는 이유로 결국 다다를 허무를 마주하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우리는 존재의 목적을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 것일까?
두 달을 넘게 경제 활동에 손을 놓고 있다. 앞서 늘어놓은 그런 저런 이유도 맞고, 그저 이 즈음이면 진지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앞뒤 없이 달려만 가느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큰 계기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중병이나 빚에 허덕이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과연 죽음 앞에 섰을 때를 그리지 않고 계속해서 성취를 쌓아나가는 삶. 그 끝은 얼마나 허무할지, 얼마나 아플지를 말이다.
무지하다. 무능력하다. 무가치하다. 이것이 지금 나의 느낌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픈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