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무서워할 건 뭐람

미움 받을 용기

by 하민혜

유튜브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드는 세 아이 엄마를 보게 되었다. 인스타에서도, 틱톡에서도 꽤나 유명한 사람이고 인플루언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춤을 잘 추거나 미모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도 보지 않는 양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사랑을 받는 것과 미움을 받는 것은 결코 대극점에 있지 않다.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대립하지 않는다. 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큰 미움을 받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움이 두려워 사랑받기를 거부한다.


많은 이들이 나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며 그들의 실력이나 성과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진실이 그렇다. 간혹에 태어나는 시대의 천재를 제외하고서 우리 모두의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부자가 되거나, 인플루언서이거나, 유명 인사가 되는 것은 결국 '용기'의 문제인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마주할 용기, 나를 평가하는 이들을 수용할 용기,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용기 말이다. 성공은 그릇의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그릇은 다름 아닌 사랑 결국 미움을 수용할 크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대체로 어설프게 나서고 스리슬쩍 빠져나오곤 했다. 어느 곳에 가져다 놓아도, 조금 잘하는 만큼까지는 열심이었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그래 '나아가지 못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남들보다 뛰어날 정도로까지 '나아가진 않았다'고 말해야 옳다.


어릴 때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에도 건반을 내리치는 감각을 떠올리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평생 업으로 삼아야지 싶을 만큼 연주에 몰입했던 전율이 손가락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부터 제법 실력이 괜찮았다. 정신 사나우리만치 숲을 나다니길 좋아했던 10살의 소녀가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늘 진지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가방을 집어던지고 거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여느 날처럼 빠져들어 한참 건반을 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칼에 베이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번쩍였다. "민혜야! 몇 번을 부르니? 그만 좀 쳐! 네가 피아노 치는 소리는 왜 이렇게 시끄럽니?" 엄마였다. 이 일을 두고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날 하필이면 할머니가 전화하셔서 엄마를 한 솎음 볶아냈거나, 양말을 아무 데고 벗어던진 아빠에게 넌더리가 났던 건지도 모른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원치 않는 말을 아이들에게 내뱉을 때가 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세상밖으로 삐져 나온 그 말들은 나름의 힘을 갖고야 만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넋이 나간 마냥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삼 남매 중 둘째로 늘 큰 언니와 방을 함께 썼다. 12살엔가, 신효범의 '난 널 사랑해'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언니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야 네 노래소리 듣기 싫어 목소리가"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집에서 노래 부르기를 멈췄다.


더는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꺾어버리는 일이 많을지 모른다. 우리의 꿈과 보통의 재능은 그렇게 싹조차 틔우지 못하는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지금에도 역시나 같은 마음이 올라온다. 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이, 가슴 웅어린 말을 내뱉는 것이, 한 가락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 아침 떠오른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치고 빠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용기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낀다. 안전한 지대를 벗어나 한 발짝 나아가는 일을 실은 간절히 기다리는 보통의 존재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그냥 해. 미움 받아도 괜찮아. 그 사람도 너도, 우린 모두 어차피 죽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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