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고 사무실에 가는 길이다.
문득 고요한 차 안의 공기가 새삼스럽다.
운전을 좋아한다. 기회가 닿으면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냅다 오고 가기를 좋아한다고 늘 자부했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주로 밀린 강의를 듣거나, 지루해 집중이 어려운 경제 방송, 영어로 떠드는 라디오를 들었고 졸릴 땐 음악을 들었다. 모든 시간이 손아귀에 들어오도록 관리하고 움직이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바쁘게, 더 바쁘게 정신없이 쥐고 흔드는 성취감은 하루를 열렬히 살아낸 훈장과도 같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멋지다고 여긴 것일테고 나는 멋진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게 자아도취했던 지난날들이 발아래 흩날린다. 나는 삶에 무엇을 원하는 건지, 지금 마음은 어떤지를 캐묻지 않았다. 답이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기보단 그저 바쁘게 살아내면 그만인 것 같았다. 실은 속절없는 침묵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 것을 안다.
귀가 닳도록 강의나 강연을 듣고, 눈이 시리도록 책을 읽으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면서 이리저리 내달리기만 했다. 이따금 삶이 제자리 같다 느낄 때에는 단지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그리고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라고 착각했다. 다행스럽게도 게으른 성정 덕에 몸이 망가질 정도로 나를 다루지는 않았다. 이내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던 시점은 이혼을 결심하고서였다. 그때엔 마치 이혼을 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굴며 지독한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대체로 그렇듯 성격 따위와 가치관의 차이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이혼을 결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제야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이 없는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한 순간도 가만 있질 못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강의를 보고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음악이라도 들어야 했고, 일을 하든 생각을 하든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멈춤 없이 살아가는 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인 줄 알았다. 마치 세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도록, 답이 없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쉴 새 없이 어딘가에 정신 팔리게 하는 것과 비슷했다. 오만하게도 나는 내 '생각'으로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여겼다.
모든 게 오고 가는 인연이라는 것을 알면서 알지 못했다.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게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온데 간데없이 한 줌의 먼지가 되는 어느 날, 나는 과연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이 팔린 듯 살아가던 날에서 한 껏 벗어난 지금에야 내가 얼마나 불안을 느끼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얼굴로 지금 여기, 이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다.
별거와 이혼 과정은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지만 없어서는 안 될 감사한 날들이다. 그날들에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토대로 책 한 권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이후 나의 삶은 참 많이 변해갔다. 그날들을 지나며 커다란 몸집이 서서히 방향을 틀듯 나의 삶도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형이라고 봐야겠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단박에 바뀌지 않는 일들도 있었지만, 소소하면서도 널따랗게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껏 가벼워진 지금에야 침묵에 드리운 묵직한 어두움을 인정하고 바라본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했던 날을 지나, 설핏이나마 실눈을 뜨게 되었음을 느낀다. 이제 나는 걷거나 운전할 때에, 여느 날처럼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지 않는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발을 붙이고 슬몃 새어드는 불안과 침묵을 즐긴다. 참을 수 없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하는 그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있는 모든 순간을 대부분 즐기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소음이라 여겼던 서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덜커덩거리는 차소리가 들리고, 전에 보지 못한 건물들이 보인다. 눈치채지 못했지만 늘 그렇듯 모든 날과 장면이 낯섦과 새로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