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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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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Sep 08. 2024

걸리고 말까, 디디고 나아갈까

아침편지

창밖에 포실포실 구름이 떠다닙니다. 기온이 내려가 물방울이 맺혀서요. 흐릿한 새벽을 지났으니 종일 선명할 것 같아요.


토요일은 아이 친구들이 합세해 집안이 시끌 법석했어요. 조카 녀석까지 아이 다섯을 제 다니는 수영장에 데려갔어요. 주말은 자유 수영 날이에요.


실력이 제각각이지만 호흡이 엉망이라 또 주제넘게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오늘도 가자는데 첫째, 셋째 주 일요일은 휴무예요. 덩달아 저도 휴무입니다.


이 집엔 고양이가 다섯 마리입니다. 새끼 세 마리를 포함해요. 가장 오래 살은 초코와 이번에 새끼를 낳은 루나 이야길 하려고 해요. 루나는 이제 1살이 넘었어요. 둘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재밌습니다.


초코는 겁이 많아요. 경계심이 큰 아이라, 몸을 부풀리고 '우웅'하는 소리도 잘 내는데요. 루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천연덕스럽습니다. 초코가 적대해도 '으응'하며 중얼거리곤 해요.


아이들이 아가였을 때 초코가 집에 왔어요. 어미 고양이가 버린 건지, 탈이 난 건지 혼자 바들바들 공장에서 떨고 있었고요. 새까맣게 웅크린 고양이가 한 달 내내 공장에 처박혀 있대서 데려왔어요.


길냥이 포스가 강해요. 그땐 집에 아가들 챙기랴, 많이 예뻐해 주지도 못했어요. 제가 아이들과 함께 자는데요. 방에서 화다닥 뛰어다니니까 밤이 늦어선 문을 닫고 잤어요.


집에 사람이 오면 구석 어디 박혀 나오지 않아요. 세상 모든 걸 무서워합니다.ㅋㅋ 고양이가 '하악, 하악' 소리를 내면 다가오지 말라는 거예요. 위협을 느낀 건데요. 초코는 아직도 루나의 새끼들을 보면서도 연신 하악질을 합니다.


무서운 거예요. 겁을 먹은 게 눈에 보여요. 재밌는 건 밥을 먹을 때에나 간식을 먹을 때예요. 누가 봐도 이 집의 권위자처럼 보이는 초코는 정작 권리가 없어요. 루나는 한 번도 몸을 부풀리거나 하악질 하지 않지만 늘 먼저 먹습니다. 초코가 먹고 있어도 자연스레 머리를 들이밀어요.


낮게 흐르는 물이 천하를 지배한다고 하죠. 목소리와 행동에 힘이 들어간 건 약함이에요. 강해 보이면 약한 겁니다. 부드러운 쪽이 강한 거죠.


루나는 종일 사람과, 새끼들과 초코와도 소통하는데요. 사람으로 치면 상냥한 말소리처럼 들려요. 이래라저래라, 딱딱하기보단 권유하고 제안하는 느낌이에요. 사람에게든 고양이에게든 늘 훈계하는 듯한 초코는 구석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아요. '다가오지 마' 포스가 있어요.


생각나는 사람 있으신가요? ㅎㅎ아이들을 관찰하면 어른의 세계가 보이고 고양이 습성을 봐도 그래요. 애다, 어른이다 나누지만 다를 게 없듯이. 사람이고 고양이고 마찬가집니다.


하늘 보셨나요? 아침 햇살이 노랗고 보드라워요. 상냥한 오늘이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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