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
좋은 아침이에요. 늦은 밤 탈이 났어요. 비밀을 간직한 양 배를 움켜쥐고 잠을 설쳤어요. 우물우물 씹으며 가득 채웠던 게 원인인가 봐요. 20대 어느 날 친구랑 맥주를 마시다 탈이 났던 기억이 나요. 일산 어디였는데 길이 샛노랗게 보였지요.
우연히 sns에서 보았던 기구한 여인의 모습도 어른거렸어요.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시설에서 자랐다고 해요. 미혼이고 젊은 나이인데 암이 꽤나 진행됐더라고요. 수술이 불가하다고 결과가 나와 마지막 면역 항암 치료를 한대요. 위로해 달라, 기도해 달라고 글과 사진을 남겼어요.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요. 생판 모르는 이라도 따듯하게 위로하는 모습에 덩달아 울렁거렸어요. 저는 감
히 한 글자의 위로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아플수록 더 깊은 동굴에 들어가는 건 제 버릇이에요. 위로도 간호도 불편합니다. 어려서 자라온 환경과 관련 있을 거예요. 못난 행동이지요.
실은 마음과 다른 식의 위로나 어수선한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요. 상대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지 못하니까요. 가장 큰 위안은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겁니다. 호들갑 떨지 않고 가만히요. 대신 어디도 가지 않아야 해요. 울면 우는 대로, 떠들면 떠드는 대로.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그런가 보다, 하면 좋겠어요.
화가 날수록, 그러니까 아플수록 입은 다물어집니다. 어떠냐 묻는다면 남 이야기하듯 말해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요. 대표적인 '이중 언어'이지요.
"오지 마라."는 건 오라는 거래요. "전화할 거 없다. 알아서 한다."는 건 전화하고 도와달라는 거라고요. 한국은 본심과 다른 말을 하는 게 배려라고 착각한다죠. "와서 좀 도와줄래?"라고 말하는 일에나, "자주 전화 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라고 말하면 서로 좋은데 말이에요.
사람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어요. 서로가 서로를 그럼에도 치워버리지 말았으면 해요. 늘 저를 처분하기 바쁘지만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요. 편지를 다 쓰면 아픈 여인에게 찾아가 나름의 말을 건네야겠어요. 기도하겠다고, 미안하고 고맙다고요.
창밖이 늘 푸르스름해요. 나무가 무성한 탓도 있지만 엷게 깔린 필름 때문이에요. 제가 한 건 아니라요. 이사 오고 보니 이미 그랬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떤 색인가요?
순하고 느린 숨을 내뱉어 봅니다. 새벽 명상처럼요. 매 순간 그럴 순 없지만 투명하고 가볍게 살고 싶어요. 색을 제단 하지 않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서요.
즐거운 추석 연휴 시작이네요. 바쁘실까요? 찰랑찰랑 행복이 차오르는 연휴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