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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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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Sep 12. 2024

고통은 '지금 여기'를 경험하게 한다.

아침편지


안녕하세요. 오늘 새벽은 유난히 고요합니다. 슬쩍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풀벌레가 조잘거립니다. 원고를 살핀다고 기상 시간을 당겼는데 너무 좋아요.^^


명상할 때 파드마를 짜고 앉는데요. 기억하시나요? 일명 연꽃 자세입니다. 가부좌를 트는 것보다야 다리고 골반이 불편하긴 해요. 정확히 말해 아픕니다.ㅎㅎ


명상하면 생각이 한시도 조용하지 않은 걸 목도하게 돼요. 어떤 때엔 나 스스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호흡으로 돌아오기를 수차례 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요. 


편안하게 앉아 명상하다 파드마를 짠다고 다리를 꼬며 알았는데요. 그건 바로, '고통'이 나를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한다는 사실이에요. 쉽게 말해 아파서 다른 생각할 여지가 줄어드는 거지요.ㅎㅎ


느긋하게 '지금 여기'를 경험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게 쉽다면 삶에 풍파가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대개 과거와 미래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녀오지요.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고, 시기하거나 염려하곤 하는데요. 바로 지금 여기 있지 못하는 '병'입니다. 모두가 앓고 있는 병이에요.


고통의 역할이 성장이다 뭐다, 말이 많은데요. 무엇보다 아픔이 있어야만 '나'와 '지금'을 바로 보는구나, 싶은 겁니다.


들꽃으로 피어난 내가 포장지에 둘러싼 화려한 꽃을 보며 '왜 나는 여기, 이 척박한 땅에 태어났는가.'미련을 떱니다. 꽃다발을 바라보는 사람을 보며 시기 질투합니다. 그 꽃이 금세 시들고 말 것은 생각할 수 없어요. 들꽃의 시선은 거기까지 볼 수 없으니까요.


어느 날엔 지나는 새를 보며 한탄합니다. '나는 왜 저들처럼 날지 못하는가.'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머문 땅을 느낄 새는 없습니다. 도리어 낮은 곳에 피어나게 한 부모를 원망해요. 자기 뿌리를 저주합니다.


5살 꼬마 아가씨가 삽을 들고 나타나 들꽃을 파헤쳐요. 몸 여기저기 뜯기는 건 물론이지요. 땅 밖으로 뿌리까지 드러나게 돼요. 고통에 이르자 들꽃은 드디어 자기 몸과 땅을 바로 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땅에 박힌 뿌리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그제야 알게 돼요. 


수영 가는 날입니다. 전생에 물고문을 받았나, 얼굴 넣을 생각 하면 시퍼레지네요. 고통을 즐기다 올게요. 바다 수영 상상하니 흥이 납니다. 오늘도 기꺼이 마주할 고통과 인사 나누기로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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